지난 3년간 한국 경제는 전례 없는 침체의 늪에 빠져왔다. 누적 성장률은 네 개 분기에 걸쳐 1년 동안 -0.3%를 기록하며 주요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했다. 이는 OECD 평균 성장률 1.8%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경제 침체의 가장 큰 배경에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가계 소비지출의 장기 침체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1분기 가계 당 실질소비지출은 361만 원으로, 2016년 1분기와 동일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가계 소비지출 감소는 자영업 관련 소매판매 부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실질 소매판매 변화율은 2022년 2분기부터 1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올해 4월과 5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수치를 보였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네 개 분기 후 반등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자영업 부문은 전례 없는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출 부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수출액 3347억 달러는 2022년 상반기 수출액 3505억 달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며 ‘잃어버린 4년’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수출 비중 역시 2021년 2.92%에서 올해 2월 기준 2.66%까지 하락했다. 올해 1분기 성장률에서 내수가 –0.5%p, 수출이 –0.3%p를 기록할 정도로 내수와 수출이 동반 추락하면서, 주요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이 1%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민생과 경제의 붕괴는 정부와 민주주의의 실종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제 연구단체인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의 민주주의 수준 지수에서 한국은 2021년 17위에서 지난해 41위로 3등급 국가군으로 전락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민주주의 회복 신호가 감지되자 시장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을 회복했으며, 이재명 정부 첫 달인 6월 수출액은 6월 기준 역대 최고인 598억 달러를 기록하며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경제 주체의 심리가 가장 빠르게 반영되는 주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코스피 지수 300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의 이러한 긍정적 반응은 국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 기조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특히, 이재명 정부 경제 철학의 상징인 ‘민생지원금’을 중심으로 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의 신속한 편성은 단순한 산소호흡기를 넘어 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30년 이상 역대 정부가 대외환경 변화에 따른 충격으로부터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방치해 온 결과, 내수 취약성은 구조화되었다. GDP 대비 가계소비지출 비중은 외환위기 이전 60%를 넘었으나, 현재는 46% 미만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가계 소비지출은 GDP의 3.9%에 해당하는 79조 3000억 원이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는 5.5%에 해당하는 125조 5000억 원으로 그 격차가 확대되었다. 이는 자영업, 내수, 성장이 곤두박질친 주요 원인이다.
이는 미국의 경우와 대조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감소한 개인 소비지출을 회복하기 위해 2021년 GDP의 8% 규모인 1조 9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미국 구조 계획’을 추진했고, 이는 2021년 2분기부터 개인소비지출이 예상치를 초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 가계 희생을 교훈 삼아 가계부채를 GDP 대비 60.7%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90%까지 증가하여 부채 상환 부담이 가계 소비를 억압하고 성장을 둔화시키는 핵심 원인이 되었다.
문제는 가계소비지출 붕괴 규모를 볼 때, 일회성 민생지원금만으로는 민생 회복에 크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민생지원금을 정기적인 사회 소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일회성 지원금은 ‘일시적 소득’에 불과하며, 지역화폐로 지급하더라도 기존 지출의 일부를 상쇄하는 데 그쳐 소비 진작에 한계가 있다. 또한, 규모가 부족하고 재정 부담 증대라는 문제점을 내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소득 강화와 조세에 의한 재분배 개선이 필수적이다. 현재 한국은 OECD에서 사회 소득과 재분배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에 속한다. 예를 들어, 소득 공제 전면 수술을 통해 확보한 추가 세수를 전 국민에게 인적 공제 혜택으로 균등 지급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100만 원을 8회 지급할 수 있다.
이처럼 일정 비율을 지역화폐와 연계한 정기 소득으로 정착된 민생지원금은 중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여 소비 진작 및 내수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또한, 하위 70%가 최대 혜택을 보게 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의 최저임금 의존도와 기초 노령연금 인상 부담을 완화하고,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 및 노인 빈곤율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불어, 서민의 물가 피해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2020년 이후 전체 물가는 16% 인상된 반면, 저소득층의 지출 비중이 높은 식료품 물가는 25%나 올랐다. 싱가포르는 정부가 물가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통해 물가 상승률을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민생 안정화와 내수 진작을 바탕으로 반도체+AI 생태계 재구성을 추진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