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과 발표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결국 실패로 이어지며, 이는 현재 우리나라 도시와 산업 현장에서 뚜렷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 곳곳에서 나타나는 빈 도시와 과거의 영광에 머무른 산업 생태계는 이러한 문제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과거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경제 문제를 부각시켜 승리했듯,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생태계’를 살피지 못한 채 추진된 정책들이다.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물고 두려움만이 감도는 원도심과, 사람은 살지만 고립되어 외로운 혁신도시는 이러한 실패의 결과물이다. 지방을 살리기 위해 조성된 혁신도시에는 젊은 부부가 정착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배우자가 일할 일자리가 없다면, 혁신도시로 발령이 나더라도 가족을 데리고 내려갈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안 가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지방 도시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신도심이 건설되고 아파트가 공급되지만, 인구 증가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도심이 활성화되는 동안, 기존의 원도심은 점차 사람이 떠나 유령도시화되는 ‘원도심 공동화’라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창원과 부산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운 도시 간에도 자동차 없이는 사실상 왕래가 불가능한 ‘마음의 거리’가 500km에 달한다는 지역 청년들의 증언은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통근 전철’이라는 현실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간절히 바라지만,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 늘 난항을 겪는다고 말한다.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러한 난항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 현장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게 드러난다. 압도적인 1위였던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이유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협력 관계에서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수에서는 10배, 패키징 기술에서는 10년 이상 뒤처져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뀌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생태계를 번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세상사의 대부분은 각기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모든 정책은 ‘가짜’이며, 결국은 해가 지면 귀신 나올 것만 같은 원도심과, 홀로 남겨진 듯 외로운 혁신도시를 만들 뿐이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지금의 상황을 묻는다면, 그는 분명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인식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