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0%대 성장률이라는 심각한 침체 국면에 장기간 머물러 있으며, 이는 가계 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4년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유지한 것은 소비 쿠폰 지급 등 단기적 처방으로는 경제 회복이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소비 개선에도 불구하고 성장률 전망치가 1990년대 초 금융위기 수준에 머무르는 배경에는 건설 투자 부진과 수출 불확실성이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 내부의 문제, 즉 가계 소득의 억압에서 비롯된다.
1990년대 초 고도성장이 막을 내린 이후, 한국 경제는 소득 분배 악화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 및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을 선호하며 생산 자동화 및 해외 이전을 선택하면서, 충격의 비용은 고스란히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전가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가계 소비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그 결과 경제는 수출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급격히 높여 세계 경제 환경 악화 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1991년 10.3%였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2011년 36.2%까지 증가했다.
지난 30년 이상 가계의 소득과 소비는 억압되었고, 이 공백을 가계 부채라는 ‘경제 모르핀’으로 메워왔다. 그 결과 소비와 성장 둔화는 가속화되었고, 소득 증가분보다 훨씬 큰 폭으로 부동산 자산이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2023년 4분기부터 가계 부채가 감소세로 전환하고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며 건설 투자 성장 기여도가 3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은 이러한 악순환의 결과이다. 가계 소비의 구조적 취약성과 건설 투자 침체의 근원은 바로 가계 소득의 억압이며, 따라서 가계 소득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단기적인 소비 쿠폰 지급은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뿐, 늪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인해 반복적인 지급 또한 어렵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을 지원하고, 그 일정 비율을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사회 임금’ 혹은 ‘사회 소득’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고, 사회 유지 및 운영에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되는 사회 몫의 배분은 민주주의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국제 기준으로 사회 소득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사회 지출 규모에서 우리나라는 OECD 평균(21.229%)에 비해 현저히 낮은 15.326%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2024년 GDP(2557조 원) 기준으로 약 151조 원, 국민 1인당 약 300만 원이 부족한 수준이며, 4인 가족 기준으로는 연간 1200만 원, 월 100만 원에 해당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가계 소비 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은 사회 소득의 절대적 과소, 시장 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0.1%는 세후 월평균 실질 수입이 1억 2215만 원인 반면, 중위 50%는 215만 원에 불과하며, 소득 창출 활동자의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에 그친다. 하위 41%는 최저 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
정기적인 사회 소득 도입은 최저 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고, 소득의 일부를 지역 화폐로 지급함으로써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 세금 도입은 어렵다. 하지만 현행 세금 공제 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술하면 상당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110조 원의 소득 중 약 410조 원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101조 원의 세금이 감면되었다. 특히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중위 50%는 276만 원에 불과했다.
현행 공제 방식을 모두 폐지하고 확보한 세금을 전체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할 경우,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 이는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90% 이상 국민에게 순혜택을 제공하며, 소득이 낮을수록 더 큰 혜택을 받으므로 재분배 효과 또한 크다.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개혁하여 정기적 사회 소득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 및 소비 지출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소득 강화는 기본 금융 도입과 결합될 경우, AI 대전환 시대에 따른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