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기대로 위기의 늪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으나, 최근 ‘전례 없는 위기’라는 진단 속에서 정부의 민생 회복을 위한 ‘소비쿠폰’ 지급이 과연 실효성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고물가와 실질소득 감소, 그리고 내수 침체라는 4중고에 직면한 경제 상황은 소비 주체의 자신감 상실을 동반하며 ‘자발적 경제생태계 붕괴’라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발표의 배경에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심각한 소비 위축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GDP의 0.7%에 불과한 14.2조 원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가계 소비지출은 GDP의 3.9% 규모인 79조 3394억 원이 감소했다. 이후 경기가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들어 소비지출 감소폭은 4.0%에서 5.5%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소비 부진은 고스란히 가계,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액 증가로 이어졌으며, 지난 3년간 각각 약 2배, 4배, 5배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2020년 수준으로, 실질 소비지출은 2016년 수준으로 후퇴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 미국보다 앞섰던 한국의 성장률이 충격 이후 뒤처지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정부채무 역시 2019년 말 GDP 대비 35.4%에서 2023년 말 46.9%로 증가했으며, 가계부채 역시 2019년 말 89.6%에서 2023년 9월 99.2%까지 급증하며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외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1%조차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경제주체들의 자신감 상실과 소비 위축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 상황 속에서 출범한 현 정부는 민생 회복과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수위 기간 없이 출발한 지난 두 달 동안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실제로 소비심리지수가 빠르게 회복하며 34개월간 지속된 부정적인 경제 심리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지난해 2분기부터 4개 분기 동안 지난해 1분기 GDP 수준에 미달했던 경제 성장률이 올해 2분기에 드디어 회복세를 보이며 늪에서 벗어났다. 특히 가계 소비가 2분기 성장률 0.6% 중 0.2% 포인트를 견인하며, 이전 1년(4분기) 동안 -0.2% 포인트였던 내수의 성장 기여도가 플러스(+) 0.3% 포인트로 급반등한 점은 긍정적인 신호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식시장이 빠르게 반응한 배경 역시 이러한 심리 개선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심리 개선을 넘어 실물 경제의 확실한 전환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실물 경제 개선이 없는 심리 개선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민생지원금’으로 불리는 ‘소비쿠폰’ 지급을 통해 가계 소득을 강화하는 단기적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12.1조 원 규모의 소비쿠폰은 1분기 가계지출 부족분 36조 4099억 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며, 연간 가계소비 부족분 145조 6395억 원을 고려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각 부처에 추가적인 소비 진작 프로그램을 준비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서민과 중산층 생계를 위해 필수적인 식음료와 에너지 등 생활물가 안정 역시 시급한 과제이다. 2020년 대비 지난달(6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3%였으나, 식료품 및 에너지 물가는 27.3%나 상승하며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소득에 훨씬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정부가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여 생활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러한 현실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소비쿠폰 지급은 일시적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칠 수 있으며, 재정 부담으로 인해 지속하기도 어렵다. 급한 불을 끈 이후에는 재정 부담이 없는 정기적인 사회 소득, 즉 임금 지급의 제도화가 민생 회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과거 미국 바이든 정부가 ‘미국 구조 계획법’을 통해 경기 부양과 소비 지출 회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당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소비를 진작하고 GDP 증가를 이끌어냈으며, 이는 정부 채무 안정화에도 기여했다. 한국 경제 역시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에 그치지 않고 경제주체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