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도시들의 개발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간과되었던 공간들이 새로운 문화 예술의 장으로 거듭나는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과거 도시의 혐오 시설로 여겨졌던 쓰레기 소각장이 이제는 시민들이 찾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부천아트벙커B39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공간의 변신은 단순히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역 주민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발표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도시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했던 환경 문제와 그로 인한 주민들의 고충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초, 부천 중동 신도시 건설과 함께 삼정동에 설치된 쓰레기 소각장은 하루 200톤에 달하는 서울 및 수도권의 쓰레기를 처리하며 운영되었다. 그러나 1997년, 환경부 조사 결과 이곳에서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주민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마을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강력한 저항 운동을 벌였고, 결국 2010년 폐기물 소각 기능이 대장동 소각장으로 이전·통합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가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한때 도시의 혐오 시설로 낙인찍혔던 이 폐건물은 그대로 철거될 운명에 처했었다.
하지만 도시와 건물에는 고유한 운명이 있듯, 삼정동 폐소각장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기사회생했다. 약 33년 전, 환경 규제와 주민들의 고통의 역사를 간직했던 이곳은 2018년 ‘부천아트벙커B39’라는 이름으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39m 높이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는 이제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하늘과 채광을 끌어들여 다양한 각도에서 관람할 수 있는 ‘에어갤러리(AIR GALLERY)’로 변모했다. 과거 쓰레기가 반입되던 공간은 현재 멀티미디어홀(MMH)로 활용되고 있으며, 펌프실, 배기가스처리장, 중앙청소실 등 과거의 설비들은 리모델링을 거쳐 아카이빙실로 사용되는 등 과거의 흔적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부천아트벙커B39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그 공간이 지닌 역사와 이야기를 현재의 문화 예술과 융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에서는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소각장이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게 된 생생한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공공미술 프로젝트 ‘숲이 그린 이야기’는 과거의 삭막했던 공간에 희망과 생기를 불어넣으며, 모든 존재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공간의 변화는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이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된 것처럼, 과거의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복원력을 보여준다. 폐기물 처리장이었던 공간이 문화 예술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은 오래 견디고 볼 일이라는 말처럼,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도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