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적인 기업 구조조정 체제 속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용불안과 원하청 간 심화된 격차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풀어야 할 숙제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년 넘게 논의되어 온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이 2026년 3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노동자들이 겪는 고용 불안정과 노사 간 불평등 심화를 노동 현장에서의 소통과 교섭을 통해 해결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은 2013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한 노조에 대해 47억 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진 후,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담긴 성금을 전달하며 시작된 캠페인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파업과 관련된 손해배상 청구가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특히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 기본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웠다. 2003년, 파업 관련 손해배상 및 가압류 문제로 고통받던 노조원이 분신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17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배경이 되었다. 최근 조선회사 하청노조 파업에 대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은 다시 한번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조건과 약화된 단체교섭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번 개정 노조법은 이러한 오랜 노동 현장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저성장 국면에서 기업들은 상시적인 구조조정 체제를 가동했고, 이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또한 사내 하청과 같은 간접고용의 증가로 원하청 간 격차가 벌어졌으며,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종사자 등 새로운 고용 형태의 확산으로 노동 기본권의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기존 법만으로는 이러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개정 노조법은 노사 간 대화와 교섭을 통해 누적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정법의 핵심적인 변화 중 하나는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이는 2010년 대법원 판결에서 이미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용자가 될 수 있다고 본 법리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최근 하청 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거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노동위원회 판정 및 법원 판결들과 맥을 같이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결사의 자유 위원회를 통해 형식적인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노동 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사실상의 사용자’로 인정하고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 다른 중요한 개정 내용은 노동쟁의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을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과거 판례는 경영상 결정 자체를 단체교섭 및 파업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으나, 경영상 결정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될 경우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과 같이 노동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에 대해서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의제로 삼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극한의 노사 대립을 피하고 대화와 교섭을 통한 해결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의 충돌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개정법은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응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해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를 면책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파업 관련 근로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화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대항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면책하고, 조합원 개인에게 부과될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과도한 부진정연대책임의 폐해를 완화하려는 조치이다.
오늘날 노동 시장의 격차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과제이며, 유럽연합 역시 2022년 단체협약 적용률이 낮은 회원국에 단체교섭 촉진 조치를 의무화하는 지침을 채택하는 등 단체교섭을 통한 격차 완화를 모색하고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를 만들어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여 오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법 개정은 시작일 뿐이며, 실제 현장에서 법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산별·초기업 교섭의 활성화, 노동자들의 연대 강화, 사용자의 열린 자세, 그리고 정부의 제도적·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