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가난과 허기를 이겨내며 살아온 이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 이제는 일상이자 가벼운 별식이 되었다. 마치 버려지던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하듯, 우리의 삶 속에서 오랜 시간 견뎌온 것들이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되는 법이다. 이 모든 변화는 무엇인가 해결하려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과거, 부천이라는 도시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개발의 중심지였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서울의 포화된 인구를 수용하며 부천은 2000여 개의 공장이 들어서는 수도권의 강력한 배후 도시로 성장했다. 전국 평균 인구 증가율을 훨씬 상회하는 102.9% (1975년~80년)를 기록했고, 80년대 초에는 무려 126%라는 경이로운 수치로 인구가 수직 상승했다. 이는 공장에서 일하며 ‘잘 살아보겠다’는 꿈을 품었던 수많은 ‘공돌이’, ‘공순이’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이러한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국에 알렸다.
이처럼 역동적인 도시의 발전 속에서, 1992년 부천 삼정동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부천 신도시 건설과 환경부의 지침에 따라 쓰레기 소각장 건립이 추진된 것이다. 1995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 이 소각장은 하루 2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며 서울과 수도권의 쓰레기 문제를 떠안았다. 그러나 1997년, 환경부의 조사 결과에서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와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었다.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소각장 폐쇄 운동을 벌이며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2010년, 폐기물 소각 기능이 대장동 소각장으로 이전 및 통합되면서 삼정동 소각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 폐건물은 곧바로 철거되는 대신,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솔루션’을 얻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생 사업을 통해 2018년, 이곳은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새롭게 태어났다. 약 33년 전, 쓰레기를 태우던 거대한 굴뚝과 소각로는 이제 하늘과 채광을 가득 끌어들이는 ‘에어 갤러리’로 변모했다. 쓰레기 저장조였던 지하 벙커는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되었고, 쓰레기 수거 트럭이 드나들던 반입실은 멀티미디어홀(MMH)로 탈바꿈했다. 이곳의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은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소각장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의 눈물겹도록 생생한 역사를 보여주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이처럼 버려질 운명이었던 공간이 문화와 예술로 재탄생하듯, 과거 가난과 허기를 이겨내기 위해 탄생한 음식들 또한 이제는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돼지 뼈다귀로 시작된 감자탕과 뼈다귀해장국은 주머니 사정 가벼운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음식이었다. ‘국산은 게임이 안 된다’는 말처럼, 수입산 돼지고기의 큼지막한 뼈로 만든 뼈다귀해장국은 시대에 역행하는 가격으로 많은 이들에게 푸짐한 한 끼를 제공한다. 1988년 부천 원미동에서 창업한 한 가게의 뼈다귀해장국은 시원하고 달큼한 깍두기와 적당히 매콤한 국물로 지친 하루에 위로를 선사한다.
이처럼 과거의 ‘문제’들이 현재의 ‘솔루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쓰레기 소각장이 문화예술공간으로, 가난을 이겨낸 음식이 일상적인 별식이 된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견뎌온 시간들은 결국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판이 될 것이다. 아무튼, 오래 견디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