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고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최종 편입되면서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완화되고 금융시장의 안정적인 외국 자본 유입이 촉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약 2년여 간의 준비 끝에 2024년 10월, 한국 국고채는 영국의 FTSE 러셀이 산출하는 WGBI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이는 2022년 9월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린 후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결과로 풀이된다. WGBI는 블룸버그-바클레이즈 글로벌 종합지수(BBGA), JP모건 신흥국 국채지수(GBI-EM)와 함께 세계 3대 채권지수로 꼽히며, 약 2조 5000억~3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이 지수를 추종한다.
WGBI 편입 기준은 크게 정량적 기준과 정성적 기준으로 나뉜다. 정량적 기준에서는 국채 발행 잔액이 500억 달러 이상이어야 하고, 신용등급은 S&P 기준 A-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2002년부터 국가신용등급 A- 이상을 유지해왔으며, 2022년 말 국채 잔액이 100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정량적 요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을 나타내는 정성적 기준에서 미흡한 점이 편입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정부는 이러한 정성적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2023년 1월 외국인의 국고채 투자 비과세 조치를 시행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투자자등록제를 폐지했다. 또한, 2024년 6월에는 국제예탁결제기구인 유로클리어 및 클리어스트림과의 국채종합계좌를 개설했다. 이어 7월에는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은행 간 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비거주자의 제3자 원화 거래와 국내 외환시장 개장 시간 연장 등의 조치를 통해 외환시장 개방을 확대했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국고채 시장에 더욱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WGBI 편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FTSE Russell은 2024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WGBI 내 편입 비중을 2.22%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3년간 약 75조 원에서 90조 원에 달하는 신규 외국 자금 유입이 전망된다. 이 자금은 한국의 재정정책 수행을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을 절감시키고 외환시장 수급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WGBI 편입은 국채금리를 평균적으로 0.2%~0.6%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시장 전반의 금리 하락과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 과거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를 경험했지만, 2014년 이후 국민의 해외 보유 자산 규모가 외국인의 국내 보유 자산 규모를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점차 완화되었다. 2024년 2분기 기준 순대외금융자산은 8585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전반적인 외국 자본 유출입 변동성을 줄이는 데 기여해왔다. WGBI 편입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투자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능동적 자금보다는 지수 구성 비율에 따라 수동적으로 운용되는 자금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수동적 자금의 유입 증가는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성이 높은 자금 흐름을 가져와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WGBI 편입은 외국 자금의 평균 만기를 장기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재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는 약 6.4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지만, WGBI를 추종하는 자금은 벤치마크 듀레이션에 맞춰 장기물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는 한국 국고채 평균 만기 수준인 약 12.6년에 근접해 갈 수 있다. 이는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장기화됨을 의미하며, 단기 외채 비중 감소로 이어져 과거와 같은 급격한 외국 자금 유출 가능성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채권시장의 안정성과 장기적인 투자 기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WGBI 편입이 한국 국채시장이 직면한 모든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잠재성장률 하락과 고령 인구에 대한 의무지출 확대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구조적인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정치 상황 변화와 함께 원화 및 주식 가치 하락 배경에는 단기적 요인 외에도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와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WGBI 편입으로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