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아세안이 최고 수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를 수립하는 가운데, 이러한 관계 설정의 배경이 되는 문제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을 넘어, 지역 내 힘의 균형과 미래지향적 협력 과제 해결이라는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022년 한국이 공식 제안한 지 2년 만에 아세안과 CSP를 수립하게 된 것은, 한국이 아세안의 6번째 CSP 대상국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CSP는 아세안이 대화상대국과 맺는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으로, 이는 대화 관계의 성숙도를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조치다. 그러나 아세안의 입장에서 CSP 체결은 특정 국가에 대한 특별 대우나 서열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세안은 대화상대국과의 관계 관리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으며, 단순히 요청만으로 CSP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아세안이 가장 먼저 CSP를 체결한 국가는 중국이 아닌 호주였으며, 이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아세안의 고심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세안이 한국의 CSP 수립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세안이 직면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평가했음을 시사한다. 필자가 자카르타에서 만난 아세안 현지 전문가들 역시 미중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한국이 공급망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할 핵심 파트너임을 강조한 바 있다.
CSP 수립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한-아세안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세안은 CSP를 제안한 대화상대국에게 기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실질적이며 상호호혜적인’ 협력 관계 구축을 요구해 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CSP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120대 협력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120대 과제는 ‘한-아세안 연대구상’ 차원에서 이미 추진 중인 사업들과 아세안의 요청을 반영한 신규 사업들로 구성된다.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미래지향적 협력을 촉진하는 과제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은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중대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한국의 경험과 기술력은 아세안이 디지털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아세안과의 인적 교류 확대는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미중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아세안과의 안보 협력 확대는 지역 내 안정을 유지하고 다양한 비전통·신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향후 한국과 아세안은 이번 CSP 수립을 통해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제를 안고 있다. 2025년은 아세안이 ‘공동체 청사진 2025’의 이행 결과를 최종 점검하고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를 채택하는 중요한 해다. 또한, 2025년은 한국과 아세안이 CSP 추진을 위한 새로운 행동계획(Plan of Action 2026-2030)을 마련하는 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는 양측 관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미래지향적 협력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