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가 ‘전례 없는 위기’라는 늪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정치적 전환점과 함께 경제 심리, 주식 시장, 성장률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면서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빈사 상태에 빠졌던 소비를 되살리기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경제 회복에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한 새 정부가 지난 두 달간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경제는 -2.2%라는 기록적인 성장률 하락을 경험했다. 이는 1950년 이래 금융위기 충격으로 인한 2009년의 -2.6%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러한 극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집권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2021년 1월 20일, ‘미국 구조 계획법(the American Rescue Plan Act)’에 서명하며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는 2021년 미국 GDP의 8%에 해당하는 1.9조 달러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는데, 당시 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이 추경안을 통과시키며 붙인 제목이 바로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응”이었다. 이러한 과감한 조치 덕분에 코로나19 충격으로 2020년 1분기부터 급락하던 소비지출은 2021년 2분기부터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심지어 장기 추세를 초과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소비지출의 완벽한 회복은 바이든 대통령 임기 중 2000년 이후 역대 정부 중 최고 기록인 연평균 3.6% 성장률 달성을 견인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전례 없는 대응’을 미래 세대에게 재정 부담을 전가하는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정부 채무의 안정적인 관리에도 기여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019년 말 GDP 대비 99.5%였던 미국 정부 채무는 추경 집행 직전인 2021년 1분기 121.4%까지 상승했지만, 빠른 경기 회복과 GDP 증가에 힘입어 2023년 1분기에는 109.5%로 하락했다. 또한, 가계 구제 지원 덕분에 가계 부채 역시 2019년 말 74.6%에서 2023년 3월 73.2%로 오히려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즉, 소비 부양, 경제 성장, 정부 및 가계 부채 안정이라는 네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2020년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14.2조 원을 투입했으나 이는 당시 GDP의 0.7%에 불과한 규모였다. 그 결과 2020년 가계 소비지출은 코로나19 충격이 없었을 때보다 GDP의 3.9% 규모인 79조 3394억 원이나 감소했다. 경기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2022년까지 소비지출 감소액은 GDP의 3.2%로 줄었으나, 2023년 4.0%, 24년 5.1%, 올해 1분기에는 5.5%까지 하락폭이 확대되는 추세다. 이러한 소비 부진은 가계 대출, 자영업자 대출, 중소기업 대출 연체액이 지난 3년간 각각 약 2배, 4배, 5배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경기 악화가 지속되면서 올해 1분기 GDP는 지난해 1분기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2020년 수준으로, 실질 소비지출은 2016년 수준으로 후퇴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미국보다 앞섰던 한국의 성장률은 충격 이후 미국에 뒤처졌으며, 정부 채무는 2019년 말 GDP 대비 35.4%에서 2023년 말 46.9%로 증가했고, 가계 부채 역시 2019년 말 89.6%에서 2023년 9월 99.2%까지 급증했다. 재정 부담을 이유로 고통을 가계에 떠넘긴 결과, 내수 침체, 성장 둔화, 가계 및 정부 재정 악화라는 ‘전례 없는’ 4중고를 겪고 있으며,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1%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3년간 ‘경제 전염병’이 확산하며 경제 심리가 추락하고 실질 소득이 하락하면서 경제 주체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상황이 외부 요인에 의한 강요된 경제 생태계 붕괴였다면, 최근 상황은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 상실에 따른 ‘자발적’ 경제 생태계 붕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민생 회복과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김민석 총리가 ‘제2 IMF’로 비유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나아가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수위 기간에 해당하는 지난 두 달간 새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 역량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소비심리 지수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34개월간 지속된 부정적인 경제 심리가 긍정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2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으로 지난해 1분기 GDP 수준에 미달했던 경제 상황은 올해 2분기에 드디어 회복의 늪에서 벗어났다. 특히 가계 소비가 2분기 성장률 0.6% 중 0.2% 포인트를 기여하며, 이전 1년(4분기) 동안 -0.2% 포인트에 머물렀던 내수의 성장 기여도가 플러스(+) 0.3% 포인트로 급반등했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식 시장이 빠르게 반응한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민주주의 회복과 새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심리적 개선을 넘어 실물 경제의 실질적인 방향 전환이 시급하다. 실물 경제의 개선 없이는 심리적 개선 역시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물 경제 개선을 위해서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가계에 대한 지원을 통해 가계 소득을 강화해야만 한다. 제도적, 구조적 강화 이전에 현재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 대책, 즉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민생지원금’으로 불리는 ‘소비쿠폰’이 지급되었다. 그러나 12.1조 원 규모의 소비쿠폰은 1분기 가계 지출 부족분 36조 4099억 원에 비교하면 3분의 1 규모에 불과하며, 145조 6395억 원에 달하는 가계 소비 연간 부족분을 고려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은 이재명 대통령이 7월 22일 각 부처에 추가적인 소비 진작 프로그램 준비를 당부한 배경이기도 하다.
더불어, 서민과 중산층의 생계를 위해 식음료와 에너지 등 생활 물가 안정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2020년 대비 지난달(6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3% 상승했으나, 식료품 및 에너지 물가는 27.3%나 올라 고물가가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 소득에 훨씬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정부가 “서민들이 체감하는 밥상 물가와 에너지 비용 등 생활 물가 안정을 위해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러한 생활 물가의 심각성을 정확히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소득 계층별 물가 상승률을 조사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보다 높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소비쿠폰은 현재 상황에 대한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치며, 재정 부담으로 인해 지속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급한 불을 끈 이후에는 정기적인 민생 지원금 지급, 더 나아가 재정 부담이 없는 정기적인 사회 소득(임금) 지급의 제도화가 민생 회복을 위한 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 및 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