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여권지수가 만들어진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여권이 세계 최강 여권 상위 10위권에서 벗어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에는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미국 여권의 이러한 위상 하락은 단순히 순위의 변동을 넘어,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 변화를 시사한다.
미국 여권의 하락세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입국 허용 변화’가 지목된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브라질이 2024년 4월 미국 시민의 비자 면제를 철회한 것이 시작점이었다. 여기에 더해, 중국이 무비자 입국 대상국을 급속히 확대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제외시킨 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파푸아뉴기니와 미얀마 등 일부 국가들이 입국 정책을 조정하면서 미국의 점수는 더욱 하락했다. 가장 최근에는 소말리아의 전자비자(eVisa) 시스템 도입과 베트남의 무비자 입국 확대 대상에서 미국을 제외시킨 것이 ‘톱 10’ 탈락을 더욱 가속화했다. 현재 미국 여권 소지자는 227개 목적지 중 180곳에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지만, 미국이 자국 입국을 비자 없이 허용하는 국가는 단 46개국에 불과하다. 이는 ‘비자 면제 접근성’과 ‘입국 개방성’ 간의 큰 격차를 보여주며, 헨리 오픈니스 지수에서 미국이 77위에 머무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미국의 후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지난 10년간 헨리 여권지수에서 가장 큰 상승세를 보였다. 2015년 94위였던 중국은 2025년 현재 64위로 올라섰으며,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목적지가 37곳 늘어났다. 중국은 최근 러시아를 포함한 일련의 국가들과의 신규 협정을 통해 ‘개방 확대 전략’을 추진하며 세계 이동성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헨리 오픈니스 지수에서도 중국은 1년 만에 30개국에 추가로 비자 면제 입국을 허용하며 65위에 올라섰다. 현재 중국은 76개국에 입국을 허용하며 미국보다 30개국이 더 많다.
이번 미국 여권 위상의 하락은 글로벌 이동성과 소프트파워의 역학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헨리앤파트너스의 크리스티안 H. 케일린 회장은 “개방성과 협력을 수용하는 국가들은 앞서 나가고 있지만, 과거의 특권에 안주하는 국가들은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애니 포르자이머는 “트럼프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이전부터 이미 미국의 정책은 내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며, 이러한 고립주의적 사고방식이 미국 여권의 위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해 ‘제2 시민권’ 확보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미국 여권의 위상 하락은 이러한 수요 급증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