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파운드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를 합한 영업 적자가 올해 2분기 약 2조~3조 원에 달했으며, 이는 3분기에도 약 1조 원으로 큰 폭의 축소를 이루긴 했으나 여전히 막대한 규모다. 이러한 상황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9년 제시했던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을 투자하여 파운드리와 설계 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종합반도체기업(IDM) 비전에 대한 회의론을 증폭시키는 요인이었다. 당시 ‘이건희의 삼성’을 상징하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문구에 비견될 만한 ‘이재용의 삼성’만의 확실한 답이 없다는 비판 속에서,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LSI 사업부 폐쇄설과 파운드리 분사설까지 거론될 정도로 고전해왔다.
하지만 올해 3분기를 기점으로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25년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12조 1천억 원이라는 성과가 발표되었으며, 이 중 DS(반도체)부문 영업이익은 약 6조 8천억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4년 3분기 3조 8600억 원, 올해 2분기 4천억 원이었던 DS부문 영업이익과 비교했을 때 가히 ‘부활의 신호탄’이라 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실적 개선의 상당 부분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호조에 기인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적자 축소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이러한 반격의 신호는 고객 포트폴리오 재편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2025년 7월,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22조 7천억 원 규모의 장기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2033년까지 자율주행용 ‘AI6’ 칩을 생산하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TSMC와 삼성전자가 테슬라의 AI5 칩을 제조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시장의 예상을 뒤엎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더불어 8월 7일에는 애플이 미국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이를 차세대 이미지 센서 생산과 연관 지어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대만 미디어텍이 차세대 AP ‘디멘시티9600’ 생산에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고려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TSMC의 2나노 공정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삼성전자의 2나노 파운드리 웨이퍼 생산 가격이 TSMC보다 약 33% 저렴한 점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형 고객사의 확보는 매출 증대와 공장 가동률 향상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신뢰도 확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2나노 공정에서의 수율이 대폭 개선되어 현재 50%를 넘었으며, 내년 초 양산 시점에는 6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는 3나노 공정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시스템LSI 사업부 역시 이미지센서(ISOCELL)와 모바일 AP(엑시노스)에서 동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LSI 사업부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동안에도 초고해상도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이미지센서 시장을 공략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글로벌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소니에 이어 15.4%의 점유율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애플의 차세대 이미지센서가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에서 생산된다는 점은 LSI 사업부의 성과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여러 호재들이 겹치면서,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사업의 ‘종합반도체기업’ 비전이 늦었지만 구체적인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