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에 하나의 거대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한류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한류는 단순히 유행하는 콘텐츠의 집합이 아니라, 그 탄생 배경과 발전 과정,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품고 있는 복합적인 실체로 이해해야 한다.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이러한 한류의 복잡한 여정을 김춘수의 ‘꽃’,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김용락의 ‘BTS에게’, 그리고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이라는 네 편의 시에 빗대어 설명하며, 한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망한다.
한류의 여정은 김춘수의 시 ‘꽃’에서 시작된다.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구절처럼, 한류 역시 처음에는 이름 없는 ‘몸짓’에 불과했다. 한국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되고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을 때도, 이는 하나의 ‘현상’으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세계가 이를 ‘한류(Hallyu)’라고 명명하고 불러주기 시작하면서, 그저 지나가는 바람 같았던 현상은 실체적인 ‘문화적 주체’로 거듭났다. ‘몸짓’이 ‘꽃’으로 피어나듯, 한류는 세계의 인식과 호명을 통해 비로소 존재감을 확립했으며, 이는 단순한 존재론을 넘어 인식론적 선언으로 이어진다. “당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불렀기 때문이다”라는 명제처럼, 한류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그 이름을 통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이는 한류가 수동적인 소비물이 아닌,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탄생한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한류의 ‘생성’ 과정을 고통과 기다림의 시간으로 묘사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구처럼, 오늘의 한류는 하루아침에 피어난 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와 분단의 아픔, 산업화의 질주, 민주화의 함성 등 한국 현대사가 겪어온 수많은 역사적 울음과 인고의 시간들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시에서 소쩍새의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은 한국 현대사의 수난과 인고를 상징하며, 이는 마치 불가의 연기(緣起) 사상처럼, 어떤 생명도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주의 인연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피어난 국화 한 송이는 이러한 역사적 시련과 굴곡, 성공과 회복의 총체적이며 문화적인 결정체인 한류다. 이는 한류가 단순한 콘텐츠 상품을 넘어, 한국 사회가 겪은 모든 경험이 맺은 ‘기억의 꽃’임을 증언한다.
한류의 ‘공감’ 능력은 김용락 시인의 ‘BTS에게’를 통해 드러난다. 시에서 “LOVE MYSELF, LOVE YOURSELF!/(…)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비로소 가슴이 뛰고 인간이 된다는 것을…”이라고 토로하듯, BTS는 언어를 초월하여 세계인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진심 어린 이야기꾼이다. 그들의 노래는 말보다 앞서는 진심의 파동이며, 춤과 몸짓으로 쓰는 시와 같다. 이러한 진정성은 팬덤을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문화의 공동 창작자로 만들며, ‘다른 언어로도 마음속을 두드리는’ K-콘텐츠의 힘을 보여준다. 시가 개인의 고백이지만 동시에 집단의 거울이 되듯, K-콘텐츠는 ‘완성도’나 ‘스타일’을 넘어선 ‘진정성’으로 세계의 감수성과 접속하며 한류의 핵심 비결을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나짐 히크메트의 ‘진정한 여행’은 한류의 ‘지속’적인 여정을 강조한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는 말처럼, 한류 역시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 많은 서사, 더 깊은 공감, 더 다양한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자만하거나 자족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더 좋은 미래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류는 이제 단지 확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가치, 다문화적 포용, 인간성의 회복을 통해 문명사적 대안 역할을 추구해야 한다. K-콘텐츠가 세계를 향해 말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안의 진실도 말해야 하는 것처럼, 외연을 넓히되 내면을 잊지 않을 때 ‘진정한 여행’은 계속될 수 있다. 창·제작자, 플랫폼, 연구자, 정책 담당자, 그리고 수용자 모두에게 영감과 상상, 전략과 방법론, 전망과 통찰, 기획과 비전, 그리고 향수와 감동을 선사해야 할 한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