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라는 거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평균 수명은 늘었으나, 현재의 주거, 지역, 서비스 체계는 ‘젊고 건강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어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상의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구조적 난제이며,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고령자 지원’이라는 과거의 정책 패러다임을 넘어 ‘모두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설계하는 새로운 접근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책은 고령화에 따른 복합적인 일상생활 문제를 ‘돌봄은 복지’, ‘건강은 의료’, ‘주거는 부동산’과 같이 분절적으로 다루어왔다. 이러한 개별적 대응은 유기적인 연결성을 결여하여 고령자의 삶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특히 ‘살던 집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는 고령친화적 삶의 이상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건강 상태의 변화와 돌봄 요구 증가를 고려하지 못하고 고령자를 특정 공간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는 ‘장소에 머무는 노화’에서 벗어나 ‘과정에 대응하는 유연한 생활환경’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주거 공간의 변화 적응, 복지 서비스 연계, 이동성과 사회적 관계 유지 등 일상의 기반을 재구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고령친화도시는 특정 세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포괄적인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어디서 나이 들 것인가’라는 장소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라는 삶의 과정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해외의 NORC(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모델은 이러한 전환의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된다. 이들 모델은 고령자의 신체적 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서비스 연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을 막고 삶의 목적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NORC는 자연스럽게 고령자가 밀집된 지역을 기반으로 건강관리, 주거관리,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며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CCRC는 건강 상태 변화에 따른 연속적인 돌봄을, UBRC는 세대 간 교류와 평생학습을 통해 삶의 의미와 소속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며, 고령화라는 과정을 ‘삶의 통합적 변화’로 인식하고 주거, 의료, 사회적 자원들을 ‘동선 위에서 엮어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고령자 주거복지 정책을 ‘시설’과 ‘재택’의 이분법으로 구분해왔으나, 그 사이 존재하는 수많은 삶의 전환 지점과 요구되는 연속적인 서비스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계속 그 집에 살아야 오래 사는 것’이라는 단선적인 슬로건은 오히려 주거 이전이나 환경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고 서비스 미이용이나 방치를 초래할 수 있다. 고령자의 삶은 신체 기능 저하, 배우자 사별, 소득 구조 변화 등 시간과 함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역동적인 변화의 연속이며, 주거, 복지, 보건 영역은 이러한 변화에 유기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따라서 ‘살던 집에 머무르는 것’을 절대적인 목표로 삼기보다는, 고령자의 변화에 맞춰 주거와 서비스가 함께 이동하고 조정될 수 있는 유연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들기’와 ‘지역공동체와 함께 나이들기’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는 길이다.
이러한 전환의 출발점은 ‘공간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고령자가 살아가는 공간은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라는 물리적 단위에 갇혀서는 안 된다. 지역의 보건소, 도서관, 마을식당, 경로당, 복지관, 공원, 골목길 모두가 고령자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이며, 이들의 ‘네트워크’가 곧 고령친화도시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고령자만을 위한 도시가 아닌,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전 생애 주기를 포괄하는 연령친화도시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는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의 핵심 방향이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에 머무르지 않고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늙음’이라는 생애 과정을 ‘견뎌야 할 일’이 아니라 ‘함께 준비할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책의 방향도 ‘지원’에서 ‘동행’으로, ‘정책’에서 ‘삶의 과정에 반응하는 환경’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누구나 존엄하게 늙어갈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하고, 주거와 서비스, 커뮤니티가 유기적으로 대응하며 삶의 유연성을 지켜주는 도시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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