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과 발표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정작 그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정책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만다. 최근 지방 도시에서 나타나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과 혁신도시의 텅 빈 풍경은 바로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해가 지면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한 원도심과, 아무도 찾지 않아 독수공방 신세가 된 혁신도시는 정부 정책이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결국 세상의 모든 일은 각기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 이러한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실질적으로는 가짜에 불과하다. 과거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캠프가 내걸었던 “Change vs. more of the same” (변화 vs 현상유지), “The economy, stupid” (경제야, 바보야), “Don’t forget health care” (의료보험을 잊지 마라)라는 메시지처럼, 유권자의 관심을 국내 경제 문제로 돌리는 데 성공했던 ‘경제야, 바보야’ 구호는 당시 미국 경제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기에 유효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지방 도시를 살리겠다며 무작정 혁신도시를 조성했지만, 맞벌이 부부가 많은 현실에서 배우자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문제’를 간과했기에 젊은이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인구 증가 없이 신도심에 아파트만 무분별하게 짓는 바람에 원도심이 유령도시처럼 변모하는 현상은 생태계의 ‘종 다양성’과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무시한 결과다.
생태계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상호 의존하는 구조는 생태계 전체를 지탱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 감자에만 의존했던 생태계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종 다양성의 부재는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 둘째는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자연에서 태양 에너지로부터 시작된 순환 과정이 막힘없이 이루어져야 생태계가 유지된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을 통해 분해되고 토양으로 환원되는 과정처럼, 순환이야말로 생태계의 생명력이다. 마지막으로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 없는 폐쇄된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점차 취약해진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상간에서 비롯된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이러한 폐쇄성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지방 도시 정책에 대입해 보자. 지방 도시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조성된 혁신도시는 섣부른 공급으로 인해 ‘종 다양성’이 부족해졌다. 젊은 부부에게 배우자의 일자리가 없다면, 혁신도시로의 이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신도심에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건설하는 행위는 원도심의 ‘종 다양성’을 파괴하여 공동화라는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다. 또한, 창원과 부산의 거리가 50km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500km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연결성’의 부재 때문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통근 전철’과 같은 편리한 이동 수단이지만, 타당성 검토에서 번번이 난항을 겪는 것은 바로 도시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반도체 산업의 세계적인 경쟁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비해 파운드리 경쟁에서 밀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 등 다양한 주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수나 패키징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 TSMC의 생태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다. 이는 반도체 경쟁이 단순한 기술력 싸움이 아니라 ‘생태계 전쟁’으로 변화했음을 간과한 결과이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해가 지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원도심과 외딴 혁신도시는 생태계를 살피지 못한 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만약 빌 클린턴에게 물었다면, 그는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외쳤을 것이다. 정책은 반드시 각 분야의 고유한 생태계를 깊이 이해하고, 종 다양성,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 그리고 개방성과 연결성을 고려할 때 비로소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