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에 ‘경청통합수석’이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경청’이라는 명칭이 붙은 자리가 신설되었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있어 ‘말하기’보다는 ‘듣기’, 즉 ‘경청(敬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실의 조직 개편은 신임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개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로, 이번 ‘경청통합수석’의 신설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존 역대 정부의 대통령실에서는 대통령의 입 역할을 주로 ‘홍보수석’이 담당해왔다. ‘공보수석’에서 출발하여 ‘홍보수석’으로, 그리고 ‘국민소통수석’으로 명칭이 변화해 온 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대국민 홍보와 소통의 범위를 넓혀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통령의 소통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말하기’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 간의 대화가 ‘말하기’와 ‘듣기’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듯, 대통령의 소통 역시 ‘국민에게 말하는 행위’와 ‘국민의 말을 듣는 행위’라는 쌍방향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에게 말을 걸더라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가 결여된다면 진정한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거 정부에서 출근길 도어스테핑이 실망감을 안겨준 이유 역시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할 뿐, 기자들의 질문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지혜를 전한 성인(聖人)의 ‘성(聖)’이라는 글자가 귀(耳), 입(口), 왕(王)이 합쳐진 형태라는 점은, 지혜로운 지도자는 단순히 말하는 자가 아니라 대중의 목소리를 잘 듣는 자임을 시사한다.
대통령실 내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귀’의 역할을 담당해 온 민정수석실은 본래 여론과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나, 주로 권력 기관 통제에 치중하면서 대통령의 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경청통합수석’의 신설은 대통령의 ‘듣기’라는 소통의 본질에 초점을 맞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미팅’을 진행하며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은 이러한 ‘경청’의 실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렇다면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첫째, 대통령의 경청은 기꺼이 반대자의 목소리까지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지지자나 편에 선 목소리만을 듣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6월 26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추경예산안 시정연설 후 야당 의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권성동 의원의 어깨를 ‘툭’ 치는 모습은, 향후 국정 운영 과정에서 이러한 포용적인 소통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하게 한다. 대통령이 반대편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 정치의 복원과 국민 통합이 비로소 가능하다.
둘째, 대통령의 경청은 실제 정책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적 계산에 의한 형식적인 제스처로서의 경청은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단순히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를 ‘상징적 반응성’이라고 한다면, 경청한 내용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것을 ‘실질적 반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25일 호남 주민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한 여성 참석자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절박하게 요구했을 때,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당장 제가 나선다고 뭐 특별히 될 것 같지는 않다. 진상 규명은 지금 수사 조사 기관에서 하고 있으니까 좀 기다려 보라”고 답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는 대통령의 공감적 반응이 위안이 되었을 것이며,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 역시 품게 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민원을 정책에 즉각 반영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주권정부’라는 명칭에 걸맞게 최소한 그러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경청이 ‘상징적 반응성’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반응성’으로 이어질 때, 국민들은 비로소 정권 교체의 효능감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효능감이 국민적 지지로 축적될 때, 이재명 정부는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