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날 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정겹다. 그러나 이들의 즐거운 모습 뒤에는 낡고 고장 난 의자에 앉아 있는 불편한 현실이 놓여 있다. 멀쩡한 평상형 벤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등받이가 있고 쿠션이 있는 낡은 의자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바로 지자체에서 조성한 공원 시설물이 어르신들의 신체적 불편함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등받이가 없어 오래 앉아 있기 힘들고, 딱딱한 좌판은 엉덩이를 배기게 하며, 여름과 겨울에는 뜨겁고 차가워 앉기 어렵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가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집, 마을,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정책 대상자의 삶을 면밀히 살피고 개선점을 찾아야 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국가는 어르신들의 일상적 삶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가 존재하지만, 이 조사들은 주로 “집에 방은 몇 개입니까?”, “지금 사시는 곳에서 몇 년 거주하셨습니까?”와 같은 사실 확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실 확인식 조사만으로는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과 부족함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집 현관은 이용하시는데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공원과 공원 시설물 이용에는 무엇이 불편하십니까?”와 같이 어르신들의 경험과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비로소 국민 체감형 정책 수립이 가능하다.
실제로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 커뮤니티 정책연구센터가 2021년 발간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 보고서는 이러한 경험 체크식 조사 결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해당 보고서는 기존 조사에서 다루지 못했던 어르신들의 주거 공간 내 불편함과 위험 요소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욕조의 높은 높이 때문에 들어가기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응답을 통해 어르신에게 적정한 높이와 충분한 너비의 욕조, 그리고 앉고 서기에 편안한 변기와 미끄럼 방지 바닥재, 안전 손잡이 설치 지원의 시급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외부 활동 시에는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과 짧은 보행 신호로 인한 낙상 경험을 통해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어르신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향후 본격화될 초고령사회 대응의 핵심인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 수립 시기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일상을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실태와 경험이 기본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비로소 국민 개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