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정책과 발표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생태계’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해결이 아닌 문제를 야기하는 ‘가짜 정책’이 될 수 있다. 원도심이 텅 비고 혁신도시가 겉돌며, 첨단 산업 역시 경쟁력을 잃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가 그 배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는 ‘변화 vs 현상유지’, ‘경제야, 바보야’, ‘의료보험을 잊지 마라’는 세 가지 메시지가 벽에 붙어 있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의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It’s the economy, stupid!(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통해 당시 미국 경제 침체와 실업 증가라는 실질적인 문제에 유권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는 경제에 무심하다는 인식을 부시에게 덧씌우며 클린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당장의 구호나 눈앞의 현상보다는 그 이면에 자리한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생태계의 번영을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고, 먹이사슬, 수분, 분해 및 재생산 등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 감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해 종 다양성이 깨졌을 때 발생한 괴멸적인 위기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다. 태양 에너지부터 시작하여 식물, 동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와 물질이 끊임없이 순환해야 생태계는 유지된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이 이를 분해하여 토양으로 되돌리는 과정이 바로 순환의 한 예이다. 셋째,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지기 쉬우며, 외부와의 유전자(종) 교류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근친교배 우울증’ 혹은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폐쇄된 가문 내에서의 반복적인 짝짓기가 초래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를 무시한 채 진행된 정책들은 지역과 산업 모두에서 ‘유령도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방을 살리겠다며 조성된 혁신도시는 맞벌이 부부가 배우자의 일자리가 없어 내려가지 못하는 ‘독수공방’의 공간이 되고 있다.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신도심에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은 원도심의 공동화를 심화시켜 ‘해가 지면 귀신 나올’ 유령도시를 만들 뿐이다. 창원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멀게 느껴지는 것도 자동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한 교통 시스템과 청년들이 원하는 ‘통근 전철’ 등의 생태계적 연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당성 검토의 난항은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전자가 대만 TSMC에 파운드리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는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패키징 및 후공정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생태계 속에서 작동한다. 전문 칩 설계 회사가 만든 설계도를 파운드리의 공정에 맞게 다듬고, IP 회사로부터 검증된 IP를 활용하며, 칩을 구운 후에는 첨단 패키징 및 후공정을 거쳐야 한다. 삼성전자는 IP 파트너 수에서 TSMC에 비해 10배 작거나, 패키징 기술에서 10년 뒤처지는 등 생태계의 여러 단계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뀐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홀로 노력하려 했던 점이 패배의 원인이며, 생태계를 번성시켰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세상일의 대부분은 각기 고유의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 생태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혁신도시와 원도심이 겪고 있는 문제, 그리고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에서 나타나는 경쟁력 약화 현상은 모두 생태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진행된 정책과 전략의 결과이다. 클린턴에게 ‘문제는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그는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