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내수 취약성과 소비 둔화는 30년 넘게 지속된 가계 소득의 억압과 소득 재분배 기능이 약화된 불공정한 조세 체계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소비 쿠폰과 같은 일회성 정책으로는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9%와 0.8%로 하향 조정하며 경제 상황의 녹록지 않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경기 침체는 단순히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경제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특히 90년대 초 이후 소득 분배 악화와 함께 충격의 비용을 가계에 전가하는 방식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는 경제에서 가계 소비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 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4.8%와 7.1%에 달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다. 가계 소득이 억압되는 동안, 이를 일시적으로 메우기 위해 가계부채가 급증하며 부동산 자산은 소득 증가분의 7.4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고금리 상황이 겹치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이상 가계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기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이는 건설 투자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단기적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소비쿠폰의 반복적 지급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일회성 지원에 그쳐 경제 체질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정기적인 가계 소득을 지원하고, 그 일부를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회 임금’ 또는 ‘사회 소득’의 개념과 연결된다.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생산의 결과물 중 사회 몫으로 떼어낸 사회 소득은 모든 구성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으로 배분되어야 하며, 이는 민주주의 수준에 따라 정치 영역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 지출 규모는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이는 곧 사회 소득의 절대적인 부족을 의미한다. 2024년 기준 OECD 사회 지출 규모(GDP 대비)는 평균 21.229%이지만, 우리나라는 15.326%로 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는 국민 1인당 연간 약 300만 원 정도의 사회 소득이 OECD 평균보다 부족하다는 계산이다.
가계 소비 지출의 구조적 취약성은 이러한 사회 소득의 과소, 시장 소득에 대한 과잉 의존, 그리고 시장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창출 활동자의 평균 월수입은 282만 원에 불과하며, 하위 41%는 최저임금 기준 월수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보여준다.
정기적인 사회 소득 도입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고, 지역 화폐 지급을 통해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현재 한국의 개인 소득세율은 네덜란드와 유사한 수준이지만, GDP 대비 개인 소득세 비중은 낮다. 이는 다양한 공제 혜택으로 인해 소득세율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110조 원의 소득 중 약 410조 원에 공제 혜택이 적용되어 약 101조 원의 세금이 감면되었다. 특히 소득 상위 0.1%는 1인당 1억 1479만 원의 감세 혜택을 받은 반면, 하위 30%는 421만 원에 그쳤다.
현행 공제 방식을 전면 폐지하고 확보된 세금을 인적 공제만을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의 지급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은 재정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더 큰 혜택을 제공하여 재분배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수술하여 정기적인 사회 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계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해결책이다. 이러한 소득 강화는 기본금융 도입과 결합될 경우, AI 대전환 시대에 필요한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