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울산의 산업 발전과 지역 경제를 지탱했던 고래 포경 산업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이곳에서 고래고기를 맛보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사라진 산업과 옛 생업, 그리고 포경선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음미하는 의례적 의미를 지닌다. 장생포는 과거 고래가 드나들던 깊은 바다이자, 번성했던 포경 산업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장생포의 변화와 그 속에서 고래고기가 지니는 복합적인 의미를 깊이 탐구할 필요가 있다.
장생포 앞바다는 선사시대부터 고래가 모이는 천혜의 보금자리였다. 수심이 깊고 조수차가 적으며 강에서 유입되는 풍부한 부유물 덕분에 새우를 비롯한 먹이가 풍부하여 고래들의 단골 방문지였다. 이러한 자연적 조건은 1970년대 이전, 장생포가 고래 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장생포는 수출입 물류의 중심지로 대형 선박이 즐비했고, 6~7층 규모의 냉동 창고가 세워질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남양냉동, 세창냉동과 같은 냉동 창고들은 고래고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산물 가공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경영 악화로 문을 닫으며 과거의 영광을 뒤로했다.
이러한 폐허가 된 냉동 창고는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을 매입한 후,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로 재탄생했다. 총 6층 규모의 이 복합 예술 공간은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을 갖추고 지역 문화 예술의 거점이자 시민들을 위한 무료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에어장생’ 체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현한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 전시, 그리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는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장생포문화창고 내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장생포의 또 다른 역사적 맥락을 보여준다. 과거 울산은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이 집약된 산업 심장부였으나, 이면에는 온산병과 같은 극심한 중금속 중독 질환의 아픔도 겪었다. 이 기념관은 울산의 근현대 개발사를 되짚어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속에서 겪었던 고통과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처럼 장생포의 역사는 고래 산업의 흥망성쇠와 함께 산업 발전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 문제까지 아우른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 포경 금지 결정으로 장생포의 고래 포경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장생포 고래요릿집에서는 혼획된 밍크고래를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래고기는 ‘희소성’과 ‘금지의 역설’로 인해 더욱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 되며, ‘일두백미(한 마리에서 백 가지 맛이 난다)’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부위와 조리법으로 풍부한 미식 경험을 선사한다. 살코기, 껍질, 턱 아래의 ‘우네’, 배 쪽 기름층과 살코기가 겹친 ‘오배기’ 등 각 부위마다 고유한 맛과 식감을 자랑하며, 이는 쇠고기와도 다른 독특한 풍미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한 식사 공간을 넘어선다. 이곳은 사라진 산업에 대한 ‘애도와 향수’를 담고 있으며, 과거 고래로 꿈을 이루려 했던 어부들,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이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일군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