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 무역 협상이 관세 부과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되었으나, 그 배경에는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이번 합의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이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드러내며, 향후 한국 경제안보 전략 수립에 중대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기존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와 비교했을 때, 이번 합의는 한국에게 상호 관세 및 자동차 품목 관세 15%라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이는 어렵게 구축해 온 한미 경제협력의 템플릿이 무너졌음을 의미하며, 향후 정상회담에서 비관세 장벽 완화,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추가적인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망록만 남겨진 상태로 불확실성이 증대된 점은 한국 경제에 크나큰 손실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대 경쟁국들과의 상대적 평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일본, 유럽연합(EU) 등 핵심 동맹 제조국과 동등한 수준인 상호 관세 15%, 자동차 품목 관세 15%를 확보했다. 특히 미국에 절실했던 조선 협력을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한 점이 주효했으며, 경쟁국에 비해 더 이상 개방할 여력이 없는 국내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아낸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로 평가된다.
가장 중요한, 그러나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된 평가 기준은 전지적 트럼프 시점에서의 분석이다. 그의 관점에서 이번 합의는 약 40년간의 숙원 사업이자 미국의 경제안보 동맹 재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국들을 ‘중국 거대포위 구상’ 실현을 위한 ‘15% 클럽’에 편입시켰으며, 이는 결국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동맹국들의 불만을 야기하며 미국의 고립과 쇠퇴를 초래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번 한미 무역 협상 타결은 한미 관계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변곡점을 예고한다.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패권국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한국을 ‘15% 클럽’ 회원으로 편입시켰다. 이는 한국이 미국에 조선, 반도체 등 제공할 것이 많은 나라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한미동맹 2.0’ 시대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한국은 단기적으로 곧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를 최소화하고, 이번 합의의 독특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미국 동향에 대한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관세 전쟁의 향방은 결국 미국 내 정치 상황, 특히 트럼프에게 미칠 인플레이션 악영향 여부에 달려 있다. 물가 상승이 가시화될 8월 말 이후, 한미 FTA에 따른 경쟁 우위를 상실한 산업계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며,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의 운명 또한 면밀히 지켜보며 재협상 가능성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장기 전략 수립이다. 한국의 ‘15% 클럽’ 가입은 향후 대중 제조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적인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으며, 앞으로 미국은 한국에 안보 비용 분담, 주한미군 및 한국군의 역할 변경 등 ‘공정한 비용 분담’을 압박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속히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예측 불가능한 한미 관계에 원칙 있는 능동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핵심 제조업의 과도한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AI, ICT, 그린 기술과 접목한 국내 제조 혁신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수출 시장 다각화와 더불어 건실한 내수 진작 및 남북 경제 협력 여건 조성을 통한 내수 시장 외연 확대 역시 필수적인 과제이다.
‘15% 클럽’ 내에서는 강대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15% 클럽’ 밖에서는 규범 기반 다자 무역 질서 복원에 나서야 한다. 패자를 양산하는 자유무역이 아닌, 포용적 자유무역을 지향해야 한다. 한국 경제안보 전략 추진 체계 강화는 대통령실, 정부, 국회, 산업계, 시민사회가 총력 대응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며,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