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에 빈 곳간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현 세대의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준비금이 모두 소진된 이후에 보험료를 대폭 인상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함명일 순천향대학교 보건행정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발표된 건강보험 정책 현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진단을 내렸다. 지난 8월 28일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내년(2026년) 건강보험료를 1.48% 인상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으나, 보험료 동결을 주장하는 의견과 인상을 주장하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료 동결 측은 충분한 준비금을 근거로 들었지만, 인상 측은 현재의 급격한 진료비 증가 추세를 감안할 때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건강보험 총 진료비의 증가 속도는 심상치 않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8.1%씩 증가한 진료비는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1.8%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는 의료비 지출이 많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의 증가율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고령화 심화는 필연적으로 진료비 부담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을 지속해왔다. 산정특례 확대, 본인부담 상한제 개선,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고가 신약의 급여 적용 등은 건강보험 지출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료공급 구조개혁에도 상당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분만, 소아, 응급 분야 수가 인상,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포괄2차병원 지원, 필수 특화분야 지원 등에 향후 3년간 약 10조 원 규모의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어린이병원 적자 보전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시범사업도 진행되는 등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적기에 제공하기 위한 지출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정책 논의 과정에서 추가 재정 소요는 꾸준히 보고되었으며, 위원회는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즉, 지금까지의 급여 강화 정책들은 지출 증가를 충분히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출이 늘어난 만큼 수입 또한 늘려야 한다는 점은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현재 건강보험 재정 여력은 충분한 것일까? 2024년 건강보험 지출은 97조 3626억 원이었으며, 준비금은 29조 7221억 원으로 급여비의 3.8개월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2026년부터 적자로 전환되어 2033년이면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건강보험 제도의 기능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준비금이 모두 소진된 이후에야 보험료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그 부담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 나아가 자녀들에게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미래 재정 예측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보건의료 위기 상황을 미리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추세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시적 요인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준비금이 많다 하더라도 수익이 늘지 않거나 수익 증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극적인 변화와 혁신은 어렵다. 사립대학들이 지난 15년간 등록금 동결로 경쟁력을 잃어간 사례는 이러한 교훈을 준다.
결론적으로 건강보험의 지출은 보장성 강화와 구조개혁 정책, 그리고 고령화 추세로 인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줄어들 가능성이 없다. 경제 성장이나 근로인구 증가와 같은 긍정적인 요인이 보험료 인상 없이도 재정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돕겠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기대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출 증가에 상응하는 수입 확보는 필수적이며, 미래세대를 담보로 하는 현재의 보험료 동결은 더 이상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바로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이며,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결정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