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집중된 상황은 일본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심각한 노후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 일본은 가계 자산의 30~40%를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비율이 훨씬 높아 부동산 가격 하락 시 노후 대비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이러한 부동산 편중 현상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본은 우리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이미 늘어나는 빈집과 아파트 슬럼화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2018년 일본에서 출간된 ‘부동산시대’라는 책은 이러한 문제를 ‘마이너스 부동산’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며, 팔리지 않아 오히려 돈을 얹어줘야 하는 상황을 묘사했다. 일본 총무성의 2018년 빈집 현황 조사에 따르면 빈집 수는 848만 채로 전체 주택의 13.6%를 차지했지만, 2023년에는 900만 채로 증가했으며 2038년에는 31.5%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농촌 지역뿐만 아니라 도쿄 수도권의 신도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1970~80년대 인기리에 분양되었던 타마신도시 등이 현재는 노인들만 남거나 빈집이 늘어난 타운이 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빈집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이다. 더불어 구미 선진국의 공동화 방지 대책과는 달리, 매년 80만 채 이상의 주택이 신축되는 현실도 문제다. 주택 건설업자는 신규 주택 건설을 선호하고, 주택 구매자 역시 아직까지는 주택을 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단독주택보다도 재건축을 하지 못해 슬럼화되어 가는 노후화된 아파트 단지이다. 일본에서 구분소유주택이라고 불리는 아파트 재건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민 80%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재건축의 경제성, 소유주의 고령화, 상속 문제 등으로 인해 동의를 얻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재건축이 성공하려면 좋은 위치와 저층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재건축은 난항을 겪게 된다. 재건축되지 못한 아파트들은 결국 슬럼화되어 빈집의 예비군이 될 수밖에 없다.
노후화된 아파트 문제는 해당 아파트 자체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주변 지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니혼대학 시미즈 치히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 건축된 지 20~25년 지난 아파트가 1% 증가하면 해당 지역의 지가가 약 4%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일본 거주자는 1984년 1200만 엔에 매입한 아파트가 1991년 3600만 엔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300~400만 엔에도 팔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4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자, 소유주 대부분이 고령자이고 재건축 기금도 적립되지 않아 ‘가능성 제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한, 나라에서 철거하든지 말든지 본인은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체념 섞인 반응은 일본 아파트 재건축 문제의 단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가 일본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빈집 및 아파트 슬럼화 문제는 일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전년 대비 8만 가구 증가한 153만 4919채로 전체 주택 수의 7.9%에 달한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넘는 122곳에서 빈집 비율이 10% 이상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농가주택뿐만 아니라 신도시 개발로 인한 원도심의 인구 감소와 상속 문제 등으로 도심에서도 빈집이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아파트 슬럼화 문제는 심각하다. 일본의 전체 주택 중 철근·콘크리트 대규모 아파트 비율은 약 1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통계청 조사에서 전체 주택 1954만 6000채 중 아파트는 1263만 2000채로 64.6%에 달한다. 이는 거의 모두 10층 이상의 대규모 아파트이며, 이러한 비율은 향후에도 아파트 거주 선호 현상으로 인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10년, 20년 후 이 대규모 아파트들을 처리하는 문제는 상당한 사회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우리보다 앞서 일본에서 겪고 있는 사례들을 면밀히 참고하여 시급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편중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개인 차원의 자산 구조조정 노력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빈집과 아파트 슬럼화 문제로 인한 주택 가격 하락 시 노후 빈곤에 대한 우려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
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설계 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