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오는 10월 10일 라오스에서 개최되는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를 수립한다. 이는 단순한 협력 관계의 격상을 넘어, 양측이 직면한 복합적인 도전 과제들을 함께 해결하고 미래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중요한 관계 설정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차별성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실행력을 담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번 CSP 수립은 한국과 아세안이 대화 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이하는 특별한 해에 이루어진다. CSP는 아세안이 대화상대국과 맺을 수 있는 최고 단계의 파트너십으로, 이번 수립으로 한국은 호주, 중국, 미국, 인도, 일본에 이어 아세안과 CSP를 맺는 여섯 번째 국가가 된다. 최인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대양주팀장에 따르면, CSP 체결 자체는 다른 대화상대국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우대나 서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세안의 입장에서 CSP는 대화 관계의 성숙도를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성을 넘어, CSP 수립은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양측 협력의 깊이를 한층 끌어올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아세안의 신중한 대외 관계 관리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아세안은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중시하며 대화상대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단순한 요청만으로 CSP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CSP를 가장 먼저 체결한 호주 사례에서 드러난다. 아세안이 중국의 제안보다 호주의 제안을 우선시했던 것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아세안의 고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처럼 아세안이 한국의 CSP 수립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세안이 직면한 다양한 도전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을 매우 중요한 파트너로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만난 아세안 현지 전문가들 역시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공급망 및 과학·기술 분야 협력의 핵심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한 바 있다.
CSP 수립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한-아세안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세안은 CSP를 제안한 대화상대국에게 기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실질적이며 상호호혜적인’ 협력 관계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CSP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120대 협력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120대 과제는 기존의 ‘한-아세안 연대구상’ 추진 사업과 아세안의 요청을 반영한 신규 사업들로 구성된다.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미래지향적 협력을 촉진하는 과제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양측 협력의 미래 가치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은 현재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중대한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발전된 경험과 첨단 기술력은 아세안이 디지털 경제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고 탄소중립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아세안과의 인적 교류 확대는 한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더불어 미중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아세안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역내 안정을 유지하고 다양한 비전통·신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필수적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번 CSP 수립을 계기로 한-아세안 간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다. 2025년은 아세안이 ‘공동체 청사진 2025’의 이행 결과를 최종 점검하고, 후속 비전인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를 채택하는 중요한 해이다. 또한, 2025년은 한국과 아세안이 CSP 추진을 위한 새로운 행동계획(Plan of Action 2026-2030)을 마련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아세안 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굳건한 기틀을 다지고, 양측 관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