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37년 만에 보험료율이 큰 폭으로 인상되며 일단락된 이번 개혁은 단순한 재정 수지 보전을 넘어, 한국 사회가 직면한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다. 지난 2025년 봄, 18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개혁은 그동안 반복적으로 유예되었던 연금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개혁이 추진된 근본적인 문제는 고령화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미래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연금 재정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전통적인 부과방식(pay-as-you-go) 연금 구조는 현재 일하는 세대가 은퇴 세대의 연금을 부담하는 방식이기에,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보험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러한 구조에서 적립기금 없이 보험료율을 20% 이상으로 올리거나 대규모 국고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 역시 2050년에는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이 되고, 207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울트라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러한 연금 재정 설계 문제는 세대 간 정의와 제도의 존속을 위한 핵심적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번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인상하는 모수개혁안을 핵심으로 제시했다. 이는 국민의 부담 능력을 고려하면서도 노후소득 보장성을 일정 수준 강화한 정치적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는 1988년 3%로 시작해 1998년 9%까지 인상된 이후 27년간 동결되었던 보험료율을 13%로 올림으로써,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더불어 국민연금법 제3조의 2를 개정하여 국가의 연금지급 책임을 명문화하고, 출산 및 군 복무 크레딧을 확대하며,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강화하는 등 청년 세대의 연금 가입 기간을 보완하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도 마련되었다.
이러한 개혁은 당장 수년간 적립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금의 운용수익이 재정의 중요한 축으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급격한 재정 위기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고,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개혁을 단순한 보험료 인상이 아닌, 기금이 고갈되기 전 구조개혁을 준비할 수 있는 전략적 시점에 이루어진 역사적 전환이라고 평가하며, 제도의 ‘완결’이 아닌 지속 가능한 연금을 향한 로드맵의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했다.
앞으로 한국은 연금의 위기시계가 본격화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서, 이번 개혁을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번 개혁은 모수개혁을 넘어 구조개혁 논의를 본격화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향후에는 보험료율 추가 인상, 수급 연령 상향, 자동 조정 장치 도입 등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과 함께, 기초연금의 빈곤 해소 집중, 국민연금의 소득 비례 연금으로의 재편, 다층 노후소득체계 정비 등 보장성 강화 방안도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특정 세대의 이익을 넘어, 세대 간 신뢰를 지키고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위한 사회적 기반 인프라인 공적연금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