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간 이어진 바샤르 알아사드 세습 독재 정권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함께, 대한민국은 2025년 4월 10일, 193개 유엔 회원국 중 마지막 미수교국이었던 시리아와 마침내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이는 지난해 2월 북한과만 수교했던 쿠바와의 관계 수립에 이어, 한국 외교 지형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쾌거라 할 수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극비리에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 한 편의 외교 첩보극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거쳐 이번 수교를 성사시켰다.
이번 수교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시리아 내부의 극적인 정치적 격변이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이후 알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워온 이슬람주의 반군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은 지난해 12월 초, 300km 떨어진 거점에서 출발하여 열흘 만에 수도 다마스쿠스를 장악했다.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리던 바샤르 알아사드는 후원국인 러시아로 도주했으며, 1970년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집권 이후 54년간 이어져 온 부자 세습 독재는 별다른 저항 없이 막을 내렸다. 독재 체제가 지닌 구조적 한계, 즉 억압과 통제로 내부 여론을 차단하면서 몰락의 징후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부패와 불신 속에 한순간에 무너지는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중동 정세의 급변 또한 시리아 정권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이 후원하던 세력들이 큰 타격을 입었고, 시리아의 오랜 뒷배 역할을 해온 이란은 자국 정부군을 제대로 지원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발이 묶인 러시아 역시 무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한국과의 수교를 막아왔던 시리아 정권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한편, HTS 수장 아흐메드 알샤라는 2025년 1월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알샤라 대통령은 전쟁으로 붕괴된 경제와 국가 제도를 복구하고 헌법 채택과 선거 시행까지 최대 4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특히 내전 이후 경제 위축과 높은 빈곤율이 당면한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시리아는 한국의 경제 성장 비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발전 모델을 배우기 위한 실무 대표단 파견 의사를 밝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역시 개발 경험 공유, 인도적 지원, 경제 재건 협력을 제안하며 양국 간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은 중동 국가들에게 아시아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경제를 이룬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 가치를 중시하는 중동 이슬람 국가들은 사회주의나 서구식 자유주의 모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에,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경험은 새로운 시리아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과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시리아와의 수교는 한국이 북한을 제외한 191개 유엔 회원국 모두와 외교 관계를 맺는 대기록을 세운 것을 넘어,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