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과 발표가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세상일의 대부분은 각기 고유한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며, 이러한 생태계를 살피지 못하는 정책은 결국 ‘가짜’가 되고 만다.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몰이해가 초래하는 문제점은 지방의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나 인구 감소로 인한 혁신도시의 어려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공적인 생태계는 세 가지 주요한 조건에 의해 번성한다. 첫째, ‘종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며, 먹이사슬, 수분 활동, 분해와 재생산 등의 과정을 통해 서로를 돕는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 품종 감자에만 의존했던 생태계가 역병으로 인해 파괴되며 100만 명이 굶어 죽었던 비극적인 사례를 통해 종 다양성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에너지와 물질의 순환’이 필수적이다. 태양에너지가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원활해야 생태계는 유지될 수 있다. 나무가 쓰러졌을 때 곰팡이, 버섯, 세균 등이 이를 분해하여 토양으로 되돌리는 과정은 이러한 순환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셋째,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닫힌 생태계는 유전적 고립으로 인해 취약해지기 쉬우며, 외부와의 종 교류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폐쇄된 가문 내에서의 반복적인 짝짓기로 발생하는 ‘근친교배 우울증’이나 ‘합스부르크 증후군’은 이러한 폐쇄성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생태계의 원리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아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을 활성화하겠다며 조성된 혁신도시는 배우자의 일자리가 없어 젊은 부부가 이주하지 못하는 ‘독수공방’의 장이 되고 있다. 또한,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신도심에 무분별하게 아파트만 짓는 바람에 원도심은 ‘해가 지면 귀신 나올지 두려운’ 유령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창원과 부산처럼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없이는 이동이 어려운 환경은 청년들에게 ‘마음의 거리’를 500km로 느끼게 하며,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통근 전철’ 설치는 타당성 검토 단계에서 늘 난항을 겪고 있다. 이는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현실 또한 이러한 생태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에 뒤처지는 이유는 다양한 생태계 구성 요소, 즉 팹리스, 디자인 스튜디오, IP 기업, 파운드리, 패키징 및 후공정 분야에서 TSMC에 비해 현저히 약하기 때문이다. IP 파트너 숫자는 10배나 적고, 패키징 기술은 10년이나 뒤처져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 경쟁이 이미 ‘생태계 전쟁’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개별적인 노력에만 의존한 결과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대부분 일이 생태계 안에서 돌아간다는 점을 간과하는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치 빌 클린턴 캠프의 제임스 카빌이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로 경제 침체라는 핵심 문제를 부각시켜 승리했듯이, 오늘날의 정책 실패를 분석한다면 “문제는 생태계야, 바보야!”라고 외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생태계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모색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정책의 성공과 지역 및 산업의 번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