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심화와 탄소중립 달성의 시급성이 대두되면서 세계 각국이 에너지 정책 전환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거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위축되었던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가 신한울 3,4호기 착공을 계기로 새로운 희망을 얻고 있다. 2022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동향을 읽은 정부의 발 빠른 정책 전환이 한국 원전 산업의 재도약을 이끌 물꼬를 텄다.
2020년 7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마지막 기회’라는 제명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인류가 직면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하는 택소노미 개정안을 결정하며 원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뉴욕타임즈는 ‘원전 르네상스’가 도래한다는 기사를 통해 원자력 에너지의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2020년 유럽 그린딜에서 원전을 제외했던 유럽연합이 2년 만에 이를 포함시킨 것은 원전 없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결정적인 장면으로 해석된다.
탄소중립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유럽에서는 원전 없이 지속가능한 탄소 감축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풍부한 풍력 자원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영국은 이미 원전을 탄소중립의 중요한 수단으로 규정하고 원전 산업 기반 확보에 나서고 있다. 수력 및 풍력 자원을 보유한 스웨덴은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고 205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전력의 35%를 원전으로 공급받는 스위스 역시 2017년 원전 확대를 금지했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할 예정이다. 심지어 탈원전 정책을 주도했던 이탈리아마저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럽은 세계 최대의 원전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스웨덴의 10기 외에도 네덜란드 4기, 폴란드 6기, 체코 4기 등 다수의 국가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영국은 1GW급 원전 24기 분량을 추가할 계획이다. 체코의 신규 원전 사업은 유럽 시장에서 최초로 경쟁 입찰을 통해 추진된 사례로, 15년 전 UAE 원전 수주에 이어 두 번째로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한국 원전의 위상을 높였다. 이는 한국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견인하는 핵심 국가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해외에서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난 10월 30일 준공식을 가진 신한울 1,2호기와 착공에 들어간 신한울 3,4호기가 있다. 신한울 1,2호기는 원자로 펌프, 제어시스템 등 기존에 국산화되지 못했던 핵심 설비들을 모두 국산 기술로 대체한 우리나라 원전 기술의 결정체다. 신한울 3,4호기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원전 산업 생태계에 희망을 불어넣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 원전의 경쟁력은 1972년 고리 1호기 도입 이후 꾸준히 진행해 온 기술 개발과 2년에 1기꼴로 원전을 건설하며 유지해 온 산업 생태계에 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국내 12기, 해외 4기의 원전을 건설하며 공급망, 설계, 제작, 건설 기술을 확보해 왔다. 만약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었다면 자칫 잃을 뻔했던 이러한 산업 기반을 이번 신한울 3,4호기 착공을 통해 다시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24년 10월 30일의 신한울 1,2호기 준공과 신한울 3,4호기 착공 기념식은 한국 원전 산업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중요한 순간이다.
이제 한국 원전은 다음 도전 과제로 네덜란드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이미 한국을 비롯한 프랑스, 미국에 원전 건설 참여를 요청하며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는 세계 원전 시장 확대라는 외부적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우리 내부의 위협 요인도 존재한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은 한·미·프 삼국 간의 치열한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이번에 승리했다고 해서 다음 경쟁에서도 승리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 기술을 연마하고 ‘팀 코리아’의 결속을 다져야 한다.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기에 체코 원전 사업을 힐난하는 것은 외부로 쏟아야 할 노력을 국내 대응에 소모하게 만들어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K-원전은 우리 청년 세대에게 또 하나의 자부심이 될 수 있으며, 이제 한국은 우리의 청년들이 유럽의 청년들에게 유럽의 탄소중립을 이끄는 K-원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만들 기회를 맞이했다. K-원전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