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재의 준비금으로는 향후 급증할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미래세대에게 막대한 재정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함명일 순천향대학교 보건행정경영학과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보험료의 인상은 불가피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건강보험료 인상 논의는 지난 8월 28일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보험료 동결을 주장하는 측은 현재 보유한 준비금이 충분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보험료 인상 측은 급증하는 진료비 증가 추세를 볼 때 조만간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진료비 증가세는 이미 명확한 통계로 뒷받침된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연평균 8.1%씩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평균 1.8%)이나 의료비 지출이 많은 미국(2022년 4.1% 증가)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인 수치다.
이러한 진료비 증가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가 자리 잡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20%를 넘어섰으며, 이들이 전체 진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진료비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장성 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산정특례 확대, 본인부담 상한제 개선,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그리고 1회 투여에 19억 8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 신약인 졸겐스마의 급여화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최근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료공급 구조개혁에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분만, 소아, 응급 분야 수가 인상,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포괄2차병원 지원, 필수 특화분야 지원 등 향후 3년간 약 10조 원 규모의 재정 투입이 예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어린이병원의 적자를 100% 보전하는 시범사업 등 새로운 형태의 정책들도 추진 중이다. 이 모든 정책은 국민이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적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지출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처럼 건강보험의 지출은 보장성 강화와 의료 구조개혁 정책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으며, 고령화로 인해 장기적으로도 감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경제 성장이나 근로인구 증가와 같은 긍정적인 요인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수입 또한 늘려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현재 건강보험의 재정 여력을 살펴보면, 2024년 건강보험 지출액은 97조 3626억 원이며, 준비금은 29조 7221억 원으로 급여비의 3.8개월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2026년부터 적자로 전환되어 2033년이면 준비금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코로나19와 같은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 발생 시 건강보험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준비금이 고갈된 후에야 보험료를 인상하게 된다면, 그 폭은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현재 세대는 물론이고 미래세대와 자녀들에게까지 막대한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래세대에게 ‘빈 곳간’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박한 외침이 나오는 이유이다.
물론 재정 예측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추세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시적 요인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준비금이 많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수익 증가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적극적인 변화와 혁신은 어렵다. 과거 사립대학들이 등록금 동결로 경쟁력을 잃어갔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결론적으로,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보험료 동결 기조를 벗어나 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며 미래세대에게 건강보험의 혜택을 안정적으로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