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고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최종 편입되면서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고 한국 금융시장에 안정적인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2022년 9월 WGBI 관찰대상국에 포함된 지 약 2년 만에 이루어진 성과로, 외국인의 한국 국고채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제도 개선 노력의 결실로 평가된다.
WGBI는 영국의 FTSE 러셀이 발표하는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로, 약 2조 5000억~3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자금이 이를 추종한다. WGBI 편입을 위해서는 국채 발행 잔액 500억 달러 이상, 신용등급 S&P 기준 A- 이상이라는 정량적 기준과 함께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이라는 정성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국가신용등급 A- 이상 유지와 2022년 말 1000조 원을 돌파한 국채 잔액으로 정량적 기준은 충분히 만족해왔으나,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장 접근성이 WGBI 편입의 주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23년 1월 외국인의 국고채 투자 비과세 조치를 시작으로, 12월에는 투자자등록제를 폐지하는 등의 제도 개선에 나섰다. 더 나아가 2024년에는 유로클리어 및 클리어스트림과의 국채종합계좌 개통,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은행 간 시장 참여 허용, 비거주자의 제3자 원화 거래 허용, 외환시장 개장 시간 연장 등 외환시장 개방 조치를 연이어 시행하며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을 대폭 확대했다. 이러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국고채 시장에 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이는 이번 WGBI 편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FTSE Russell은 2024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WGBI 내 편입 비중을 2.22%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를 고려할 때 향후 3년간 약 75조 원에서 90조 원에 달하는 신규 외국 자금 유입이 전망된다. 이러한 자금 유입은 우리나라의 재정 정책 수행에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을 절감시키는 동시에 외환시장 수급 안정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WGBI 편입은 국채금리를 평균 0.2%~0.6%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시장 전반의 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
과거 IMF 외환위기 경험으로 인해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에 대한 우려가 상존해왔으나, 2014년 이후 한국 국민이 해외에 보유한 자산 규모가 외국인이 국내에 보유한 자산 규모를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인 상황은 개선되었다. 2024년 2분기 기준 8585억 달러에 달하는 순대외금융자산은 이러한 우려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번 WGBI 편입은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나아가 외국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WGBI 편입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투자자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능동적 자금보다는 지수 구성 비중에 따라 수동적으로 운용되는 자금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수동적 자금은 유출입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완화하고 한국 금융시장에 안정적인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WGBI 편입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 만기를 장기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는 약 6.4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WGBI를 추종하는 자금은 벤치마크 듀레이션에 맞추기 위해 장기물 투자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가 한국 국고채의 평균 만기인 약 12.6년에 근접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장기화됨을 의미하며, 단기 외채 비중 감소로 이어져 과거 IMF 외환위기와 같은 급격한 외국 자금 유출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채권시장의 안정성 확보와 장기적인 투자 기반 강화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WGBI 편입이 우리 국채시장이 직면한 모든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잠재성장률 하락, 고령 인구에 대한 의무지출 확대는 향후 구조적인 국채 발행 증가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원화 및 주식 가치 하락 배경에는 단기적 요인과 더불어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와 그로 인한 구조적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WGBI 편입으로 인한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