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랜 불안감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 국고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최종 편입되는 쾌거를 이루면서 한국 금융시장에 안정적인 외국 자본 유입을 촉진할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는 2022년 9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지 2년 만의 성과로, 그간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국고채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기울인 다각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었음을 보여준다.
WGBI는 영국 FTSE 러셀이 발표하는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로, 26개 주요국의 국고채를 포함하고 있으며 약 2조 5000억~3조 달러 규모의 자금이 이를 추종한다. WGBI 편입 기준은 발행 잔액 500억 달러 이상, 신용등급 S&P 기준 A- 이상이라는 정량적 조건과 외국인의 시장 접근성이라는 정성적 조건으로 나뉜다. 한국은 이미 국가 신용등급 A- 유지 및 국채 잔액 1000조 원 돌파로 정량적 기준은 오래전에 충족했지만, 정성적 측면에서의 미흡함이 편입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23년 1월 외국인 국고채 투자 비과세 조치를 시행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투자자등록제를 폐지했다. 더 나아가 2024년에는 유로클리어 및 클리어스트림과의 국채종합계좌 개통,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은행 간 시장 참여 허용, 제3자 원화 거래 허용, 외환시장 개장 시간 연장 등 과감한 외환시장 개방 조치를 연이어 단행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훨씬 수월한 시장 접근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한국 국고채 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WGBI 편입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주 요인으로 분석된다.
FTSE Russell은 2024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WGBI 내 편입 비중을 2.22%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를 추종하는 자금 규모를 감안할 때 향후 3년간 약 75조 원에서 90조 원에 달하는 신규 외국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자금 유입은 한국의 재정 정책 수행을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을 절감시키는 동시에 외환시장 수급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WGBI 편입은 국채 금리를 평균 0.2%~0.6%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시장 금리 전반의 하락으로 이어져 회사채 및 가계 대출 금리 인하에도 기여하며 경제 전반의 자금 조달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다.
과거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았던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우려는 2014년 이후 한국 국민이 해외에 보유한 자산 규모가 외국인의 국내 보유 자산을 초과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완화되었다. 2024년 2분기 기준 8585억 달러에 달하는 순대외금융자산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희석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WGBI 편입은 외국 자본 유출입의 변동성을 더욱 줄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WGBI 편입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투자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지수 구성 비중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성격을 띠므로, 그 유출입 변동성이 낮고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는 외국 자본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완화하고 한국 금융시장에 안정적인 자금 유입을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WGBI 편입은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 만기를 장기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는 약 6.4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지만, WGBI를 추종하는 자금은 벤치마크 듀레이션에 맞춰 장기물 투자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원화 채권 평균 잔존 만기가 한국 국고채 평균 만기 수준인 약 12.6년에 근접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장기화됨을 의미하며, 단기 외채 비중 감소로 이어져 과거 IMF 외환위기와 같은 급격한 외국 자금 유출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채권 시장의 안정성과 장기적인 투자 기반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WGBI 편입이 한국 국채 시장이 직면한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는 아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 잠재성장률 하락, 고령 인구 관련 의무지출 확대 등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상승을 야기할 수 있는 구조적인 위험 요인으로 남아있다. 최근 미국 대선 결과와 맞물려 나타난 원화 가치 및 국내 주식 가치 하락 배경에는 단기적 요인과 더불어 한국의 인구 구조 변화와 그로 인한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WGBI 편입이 금융 시장 안정에 기여한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