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전 산업은 그동안 기술 자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원자로 펌프, 제어시스템 등 핵심 부품에 있어 외부 기술에 의존해왔던 현실은 원전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한울 1,2호기는 이러한 자립의 염원을 담은 기술 집약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미자립 기술을 국산화하여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전 산업 생태계는 침체기를 겪으며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산업적 목마름 속에 신한울 3,4호기의 착공은 침체된 원전 산업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2022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정부의 정책 전환은 이러한 희망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마지막 기회’라는 제하에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인류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2년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인정하며 친환경 에너지 택소노미 개정을 결정했다. 같은 해 6월 뉴욕타임즈는 ‘원전 르네상스’의 도래를 보도하며 세계 에너지 전환의 방향을 시사했다. 특히 유럽연합이 2020년 ‘유럽 그린딜’에서 원전을 제외했다가 2년 만에 다시 포함시킨 것은,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해석된다.
유럽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적극적인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내에서도 원전 없이 지속 가능한 탄소 감축이 어렵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풍부한 풍력 자원을 기반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는 영국은 이미 원전을 탄소중립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원전 산업 기반 확보에 힘쓰고 있다. 수력 및 풍력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탈원전을 포기하고 205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35%의 전력을 원전으로 충당하고 있는 스위스 역시 2017년 원전 확대 금지 조치를 뒤집고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국민투표를 추진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심지어 탈원전 정책의 선도 국가로 알려진 이탈리아조차도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원전 정책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유럽은 세계 최대의 원전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웨덴의 10기를 포함하여 네덜란드 4기, 폴란드 6기, 체코 4기 등 다수의 국가에서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영국은 1GW급 원전 24기 분량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1~2기의 원전을 추가하려는 유럽 국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체코의 신규 원전 사업은 유럽 원전 시장에서 최초로 입찰 경쟁을 통해 추진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22년 폴란드가 3기 발주를 정부간 협약으로 추진한 것과 달리, 체코는 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했다. 15년 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이어 두 번째 경쟁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원전 르네상스의 견인자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이러한 경쟁력 있는 성과는 신한울 1,2호기의 성공적인 준공과 신한울 3,4호기의 착공이라는 국내 동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신한울 1,2호기는 우리나라 원전 산업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결과물로, 과거 미자립이었던 원자로 펌프, 제어시스템 등 핵심 설비를 국산 기술로 대체했다. 신한울 3,4호기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침체되었던 원전 산업 생태계에 희망을 불어넣은 사업이다. 2022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동향을 읽고 정부가 발 빠르게 정책 방향을 전환한 것이 이러한 희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원전의 경쟁력은 1972년 고리 1호기 도입 이후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더불어 2년에 1기꼴로 원전을 건설해 온 산업 생태계를 유지해왔기에 가능했다. 2000년대에도 국내 12기, 해외 4기의 원전을 건설하며 미국, 프랑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공급망, 설계, 제작, 건설 기술을 확보했다. 만약 탈원전 정책이 장기화되었다면 이러한 산업 기반을 잃을 위험도 존재했을 것이다. 2024년 10월 30일의 신한울 1,2호기 준공과 신한울 3,4호기 착공 기념식은 우리나라 원전 산업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원전 산업은 이제 네덜란드 시장에 도전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프랑스, 미국에 원전 건설 참여를 요청하며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는 분명 우리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위협 요인도 내포하고 있다. 세계 원전 시장 확대라는 외부 요인이 기회라면, 우리 내부의 경쟁력 약화는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은 한·미·프 세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이다. 이번 체코 원전 사업 수주가 다음 경쟁에서도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연마와 ‘팀 코리아’의 결속 강화가 필수적이다. 국가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시점에 체코 원전 사업을 둘러싼 내부 논란은 외부 경쟁에 쏟아야 할 노력을 국내 문제에 소모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K-원전은 우리 청년 세대에게 또 하나의 자부심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청년들이 유럽의 청년들에게 유럽의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K-원전을 이야기하는 미래를 만들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K-원전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이끌도록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