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올해 성장률 전망치 0.8%와 0.9%는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의 성장률과 맞먹는 수준으로, 소비쿠폰 지급 등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경제 부진의 원인으로 건설 투자 부진과 수출 불확실성이 지목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90년대 초 이후 지속되어 온 가계 소득 억압에 있다. 당시 대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며 기업들이 고용 및 임금 인상 억제, 비정규직 선호, 자동화, 해외 생산 기지 이전 등으로 대응하면서 충격의 비용이 가계,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전가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에서 가계 소비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었고, 내수 취약성이 심화되면서 수출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졌다.
지난 30여 년간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반복적인 경제 위기를 겪으며 더욱 심화되었다. 외환위기 이전 5년간 가계당 실질 처분가능소득과 실질 가계소비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4.8%와 7.1%에 달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27년간은 각각 0.7%와 0.8%로 급감했다. 가계 소득과 소비의 억압이라는 공백은 ‘경제 모르핀’이라 불리는 가계부채 증가로 메워졌다. 지난 30년간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1139조 원 증가하는 동안, 부동산 자산은 소득 증가분의 7.4배가 넘는 8428조 원이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 그리고 고금리 상황이 겹치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이상 가계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기에 기댈 수 없게 되었다. 가계부채 감소세 전환, 지방 주택 및 상업용 부동산 경기 침체, 건설 투자 성장 기여도 3년 6개월 연속 마이너스 기록 등은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건설 투자 침체의 근원은 결국 가계 소득의 억압이며, 가계 소득 강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이유이다.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으로 소상공인 평균 카드 매출액이 소폭 증가하는 등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산소호흡기 역할에 불과하며, 늪에 빠진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려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인해 소비쿠폰을 반복적으로 지급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정기적인 가계 소득을 지원하고, 이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 도입이 절실하다. 정기적인 가계 소득은 ‘사회 임금’ 또는 ‘사회 소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 지출 규모는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4년 기준, OECD 평균 사회 지출(GDP 대비)은 21.229%인 반면, 한국은 15.326%로 하위 그룹에 속한다. 이는 GDP 대비 5.903% 포인트 부족한 수치이며, 2024년 GDP 2557조 원을 적용하면 약 151조 원에 해당한다. 이를 2024년 인구 5125만 6511명으로 나누면 국민 1인당 약 294만 5000원으로, OECD 평균보다 약 300만 원 적은 사회 소득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1200만 원, 월 100만 원에 달하는 격차는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계 소비 지출의 구조적 취약성과 직결된다. 이는 절대적인 사회 소득 부족, 시장 소득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그리고 시장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비롯된다.
불공정한 조세 체계의 개혁을 통해 정기적인 사회 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행 세금 공제 제도는 소득이 높은 계층에 과도한 혜택을 몰아주며 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약 101조 원에 달하는 세금 감면 혜택 중 소득 상위 0.1%가 1인당 1억 1479만 원의 혜택을 받는 등 불평등이 심각하다. 현행 공제 방식을 전면 폐지하고 확보된 세금을 인적 공제 기준으로 전체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면, 4인 가구 기준 연간 약 860만 원, 월 72만 원의 지급이 가능하다. 이러한 조세 체계의 수술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국민 대다수에게 순혜택을 제공하며, 소득이 낮을수록 혜택이 증가하여 재분배 효과 또한 클 것이다.
궁극적으로 불공정한 조세 체계를 수술하여 마련된 정기적 사회 소득 재원은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소득과 소비 지출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소득 강화는 기본 사회의 한 축인 기본 금융 도입과 결합될 경우,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AI 대전환 시대에 따른 창업 및 양질의 일자리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성장과 내수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가계 소득을 억압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