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아세안이 최고 수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CSP)’를 수립하며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연다.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발표된 이번 CSP 수립은 양측의 대화 관계 3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CSP는 아세안이 대화 상대국과 맺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파트너십으로, 한국은 호주, 중국, 미국, 인도, 일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이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번 CSP 수립은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 한국이 아세안의 핵심 파트너로서 입지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아세안은 지역 내 힘의 균형을 중요시하며 대화 상대국과의 관계 설정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과거 중국이 CSP를 처음 제안했음에도 아세안이 가장 먼저 CSP를 체결한 상대국으로 호주를 선택한 것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아세안의 고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아세안이 한국의 CSP 수립 제안을 수용한 것은 한국을 아세안의 도전 과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지 전문가들은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한국이 공급망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 핵심적인 협력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CSP 수립은 한-아세안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세안은 CSP 체결 상대국에게 기존보다 더욱 ‘의미 있고 실질적이며 상호호혜적인’ 협력을 요구해왔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CSP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120대 협력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과제들은 기존의 ‘한-아세안 연대구상’ 사업들과 아세안의 요청을 반영한 신규 사업들로 구성되며, 특히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대응과 같은 미래지향적 협력 분야에 중점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은 디지털 경제 성장 가속화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한국의 경험과 기술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에도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 구조를 가진 아세안과의 인적 교류 확대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미중 경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아세안과의 안보 협력 강화는 지역 안정 유지와 비전통·신안보 위협 공동 대응에 기여할 수 있다.
향후 한국과 아세안은 이번 CSP 수립을 발판 삼아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2025년은 아세안이 ‘공동체 청사진 2025’의 이행 결과를 최종 점검하고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를 채택하는 중요한 해이며, 동시에 한국과 아세안이 CSP 추진을 위한 새로운 행동계획(Plan of Action 2026-2030)을 마련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아세안 간 미래지향적 협력의 튼튼한 기틀을 다지고, 양측 관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