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 대응 압박 속에서 원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으나,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는 그동안의 정책 변화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2022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동향에 대한 정부의 정책 전환으로 탈원전 정책에 목말라 있던 원전 산업 생태계에 희망의 물꼬가 트였지만, 이러한 정책 전환은 단순히 과거의 기조를 되돌리는 것을 넘어, 우리의 원전 기술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특히, 신한울 1,2호기가 우리나라 원전산업 기술의 결정체로 평가받으며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신한울 3,4호기의 착공은 이러한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침체되었던 산업 생태계를 재활성화하고 미래 에너지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준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2020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인류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2022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원전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친환경 에너지에 포함하는 택소노미 개정을 결정했다. 같은 해 뉴욕타임즈는 원전 르네상스의 도래를 알리는 기사를 내보내며, 원전 없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탄소중립에 가장 진심인 유럽에서도 원전 없이 지속가능한 탄소 감축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영국은 원전 산업 기반 확보를, 스웨덴은 205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탈원전의 원조 국가인 이탈리아마저도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검토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은 유럽을 세계 최대의 원전 시장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스웨덴,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 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으며, 특히 체코의 경우 15년 전 UAE에서의 성공에 이어 두 번째 경쟁입찰에서 승리하며 원전 도입 국가들의 ‘진검승부’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10월 30일 준공식을 가진 신한울 1,2호기와 착공에 들어간 신한울 3,4호기가 해외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이길 수 있게 해준 배경임을 시사한다. 신한울 1,2호기는 원자로 펌프, 제어시스템 등 그동안 미자립이었던 핵심 설비들을 국산 기술로 대체한 우리나라 원전산업 기술의 결정체이며, 신한울 3,4호기는 침체되었던 산업 생태계에 희망을 주는 원전이다. 1972년 고리 1호기 도입 이래 2년에 1기꼴로 원전을 지어온 우리의 경험과 2000년대에도 국내 12기, 해외 4기의 원전을 건설하며 쌓아온 공급망, 설계, 제작, 건설 기술력은 이러한 경쟁력의 기반이 된다.
이제 우리의 원전은 다음 도전 과제로 네덜란드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전 르네상스는 분명 기회이지만, 동시에 내부적인 위기 요인도 존재한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은 한·미·프 삼국 경쟁 구도이며, 이번에 체코 원전 사업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다음에도 승리를 보장할 수는 없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연마와 ‘팀 코리아’의 결속 강화가 필수적이다.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 체코 원전 사업을 힐난하는 것은 외부 경쟁에 쏟아야 할 노력을 국내 대응에 소모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K-원전은 우리 청년 세대에게 또 하나의 자부심이 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는 우리의 청년들이 유럽의 청년들에게 유럽의 탄소중립을 이끄는 K-원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만들 기회에 서 있다. K-원전이 세계 원전 르네상스를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지지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