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와 함께 봄날 제주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과거와 달리 관광객 감소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외여행 수요 증가로 인해 제주를 향하는 발길이 줄면서, 국내 여행 1번지로 불리던 제주의 위상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높은 물가와 같은 기존 이슈들이 이러한 흐름에 더욱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주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잃어버린 관광객들의 관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제주가 품은 100만 년의 시간과 그 속에 깃든 토착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산으로 ‘용머리해안’이 주목받고 있다. 용머리해안은 로컬100에 이름을 올린 제주의 소중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제주도민조차 그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용머리해안의 진정한 매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를 맞추는 것이 필수적이며, 기상 상황에 따라 출입이 통제될 수도 있어 방문 전 관광 안내소에 입장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용머리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땅으로서, 약 10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의 화산 폭발로 형성된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자랑한다. 화산 분출의 간헐성과 화산재의 이동으로 인해 세 방향으로 쌓인 화산재 지층은 용암과 바다가 빚어낸 장엄한 풍경을 선사한다. 파도에 깎여나가고 다시 쌓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마치 태곳적 제주를 만나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검은 현무암과 옥색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움푹 파인 굴방과 드넓은 침식 지대는 100만 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한다. 또한, 용의 머리 형상에서 유래한 지명처럼, 제주의 영험한 기운을 담은 이곳은 역사 속 이야기와 더불어 자연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경관을 선사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삶이 얼마나 겸손해지는지를 깨닫게 하는 용머리해안 탐방의 여정은, 제주 땅의 숙명과도 같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고사리해장국’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서 고사리와 메밀은 오랜 시간 지역민들의 주된 식량원이었다. 특히 고사리는 척박한 화산암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빗물을 저장하는 강인함으로 제주 생태계의 시작이자 식재료의 시작을 알렸다. 독성이 있지만 오랜 조리 과정을 거쳐 본연의 맛을 살린 고사리는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였다.
이러한 고사리를 활용한 고사리해장국은 제주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았다. 돼지를 가축으로 주로 키웠던 제주에서 돼지뼈로 우려낸 육수에 고사리와 메밀가루를 더해 끓여낸 고사리해장국은 걸쭉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메밀 전분 덕분에 걸쭉하면서도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국물 맛은 제주의 사투리 ‘베지근하다’는 말로 표현될 만큼 깊고 담백하다. ‘베지근하다’는 고기 따위를 푹 끓인 국물이 구미를 당길 정도로 맛있으며,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깊은 맛을 의미한다. 밥 한 공기를 말아 먹으면 죽처럼 되직해져 더욱 든든하게 즐길 수 있는 이 음식은,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삶의 지혜와 풍미를 잃지 않았던 제주 사람들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용머리해안과 고사리해장국, 이 두 가지는 100만 년의 시간과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제주가 품어온 고유한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용머리해안의 장엄한 자연과 고사리해장국의 담백하고 유순한 맛은 제주의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제주의 진정한 매력을 다시금 발견하고, 잃었던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