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화된 AI 모델의 효과적인 구현을 위해서는 AI 반도체가 필수적인 인프라이자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이를 둘러싼 세계적 경쟁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한국이 AI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적 자립을 강화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ChatGPT와 같은 혁신적인 AI 기술은 인류의 역량을 확장하며 산업과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AI의 지속적인 발전과 확산을 위해서는 인간의 뇌처럼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특화된 하드웨어, 즉 AI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현존하는 GPU는 AI 작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게임 및 그래픽 처리에 최적화된 설계로 인해 AI 알고리즘의 독특한 연산 패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에는 전력 효율성과 속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는 AI 응용 프로그램의 확장성에 제약으로 작용하며, AI-X(AI 변환) 시대를 맞아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넘어서 AI 구현의 중심 축으로 자리 잡은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AI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엔비디아는 AI 연산에 최적화된 GPU인 H100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차세대 블랙웰 GPU 출시를 통해 AI 연산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통해 GPU 성능을 강화하며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독점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인텔은 ‘가우디2’ AI 가속기를 출시하며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으며, 오픈AI는 TSMC 및 브로드컴과 협력하여 AI 연구에 최적화된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리벨리온, 퓨리오사, 하이퍼 엑셀과 같은 스타트업들이 독자적인 칩 개발을 통해 한국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연산 특화 칩은 단순한 하드웨어를 넘어 글로벌 AI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강점을 바탕으로, AI 반도체 분야에서 PIM(Processing in Memory)과 NPU(Neural Processing Unit) 기술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내에서 AI 연산을 수행하는 PIM 기술을 선도하고 있으며, 리벨리온, 퓨리오사, 모빌린트와 같은 스타트업들은 NPU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리벨리온은 ISSCC 2024에서 엔비디아의 성능을 능가하는 NPU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은 PIM과 NPU 분야에서 AI 반도체 개발 역량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한편, 급속도로 고도화되는 반도체 기술과 심화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인재 부족 문제는 심각한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KAIST는 2023년 반도체 설계에 중점을 둔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을 설립하여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이 대학원은 AI 반도체 특화 커리큘럼을 통해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교육을 제공하며, AI 알고리즘, AI 반도체, AI 응용 세 가지 기술을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무 역량과 연구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 유수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 산학 협력 프로젝트,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글로벌 경험과 네트워크 구축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AI 반도체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첫째, 경쟁국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기술 선점을 위해 정부, 산업계, 학계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메모리 강국의 이점을 살려 저전력 PIM 기반의 온-디바이스 AI 기술과 뉴로몰픽 칩 개발에 집중하여 초격차를 선도해야 한다. 둘째, 혁신 인재의 발굴 및 육성을 위한 인프라와 교육 프로그램 강화가 필수적이다.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과 같은 특화 교육 기관을 확대하고,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실무 기반의 교육 커리큘럼을 설계하며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 적응력을 갖춘 고급 엔지니어를 육성해야 한다. 셋째, 엔지니어의 처우를 개선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국내 AI 반도체 산업 종사자에 대한 경쟁력 있는 보상 체계를 마련하고,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 표준화와 AI-X와 같은 응용 기술 개발에 힘써 세계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 국제 기술 표준화를 주도하고, AI 알고리즘, AI 반도체, AI 응용 기술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AI-X를 선도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은 AI 반도체 산업의 선도를 발판 삼아 미래 기술 패권을 쥐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