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가 민주주의 회복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는 듯하지만, ‘전례 없는 위기’라는 진단 속에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급격한 경제 심리 회복과 주식 시장의 활황, 성장률 반등 등이 감지되나, 빈사 상태에 빠진 소비를 살리기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한 새 정부가 지난 두 달간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이 합격점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실물 경제의 확실한 방향 전환과 지속 가능한 회복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3년간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 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심각한 침체를 겪었다. 2020년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GDP의 0.7%에 불과한 14.2조 원이 투입되었으나, 그해 가계 소비지출은 GDP의 3.9%에 달하는 79조 3394억 원이나 감소했다. 이후 경기가 회복되는 듯했으나, 2023년 들어 소비지출 감소폭은 4.0%에서 5.5%까지 확대되었고, 이는 가계,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출 연체액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2020년 수준으로, 실질 소비지출은 2016년 수준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GDP 성장률이 -2.2%까지 떨어지는 위기 속에서도,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미국 구조 계획법’을 통해 GDP의 8%에 달하는 1.9조 달러를 경기 부양을 위해 투입했다. 이러한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응’은 소비지출을 완전히 회복시키고 장기 추세를 초과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중 연평균 3.6%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며, 정부 채무 역시 GDP 대비 121.4%에서 109.5%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 가계 구제 지원 덕분에 가계부채도 오히려 감소하는 ‘네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정책을 ‘퍼주기’, ‘현금 살포’, ‘포퓰리즘’으로 비판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코로나19 이전 미국을 앞섰던 성장률이 팬데믹 이후 뒤처졌고, 정부 채무는 35.4%에서 46.9%로, 가계부채는 89.6%에서 99.2%로 급증하는 ‘전례 없는’ 4중고를 겪고 있다. 이는 내수 침체, 성장 둔화, 가계 및 정부 재정 악화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으며, 국내외 기관들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1%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 전염병’ 확산으로 경제 주체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황은 코로나19 팬데믹 충격보다 더 심각한 ‘자발적’ 경제 생태계 붕괴를 야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출범한 현 정부는 ‘제2 IMF’로 비유될 정도의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수위 기간이었을 지난 두 달간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소비 심리 지수가 빠르게 회복되고 부정적 경제 심리가 긍정적으로 전환되는 등의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2분기 GDP 성장률 0.6% 중 가계 소비가 0.2% 포인트를 기여하며 2분기 내수의 성장 기여도가 이전 1년의 -0.2% 포인트에서 +0.3% 포인트로 급반등한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식 시장이 빠르게 반응한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심리 개선을 넘어 실물 경제의 확실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지속 가능한 회복이 가능하다.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가계에 대한 구제 및 지원을 통해 가계 소득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불리는 ‘민생지원금’이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12.1조 원이라는 규모는 1분기 가계지출 부족분 36조 4099억 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각 부처 단위로 추가적인 소비 진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식음료와 에너지 등 생활물가 안정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의 생계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와 같이 소득 계층별 물가 상승률을 조사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물가 상승률이 전체 물가 상승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소비 쿠폰은 단기적인 처방일 뿐, 재정 부담으로 지속하기도 어렵다. 급한 불을 끈 후에는 정기적인 민생 지원금 지급, 즉 재정 부담이 없는 정기적인 사회 소득 지급의 제도화가 진정한 민생 회복의 충분조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로,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