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한미 무역협상이 관세 부과 시한을 단 하루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시사한다. 이번 협상의 결과는 단순히 관세율 조정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전반에 걸쳐 복합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이번 협상 타결의 배경에는 미국이 자국의 경제안보 동맹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987년 이후 약 40년간 지속해온 자유무역 비판 기조를 이어가며, 핵심 동맹국들을 미국의 ‘중국 거대포위 구상’ 실현을 위한 ‘15% 클럽’에 편입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했다. 한국은 일본, EU 등 주요 제조국들과 함께 이러한 ‘15% 클럽’에 포함되었으며, 이는 상호 관세 및 자동차 품목 관세 15%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결과는 시간축에서의 절대 평가와 공간축에서의 상대 평가라는 두 가지 기준에서 상반된 해석을 낳는다. 한미 FTA 유지 상태와 비교하는 절대 평가에서는 한국이 상호 관세 및 자동차 품목 관세 15%라는 불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는 과거 어렵게 구축한 한미 경제협력 템플릿이 무너지고, 비관세 장벽 완화,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추가적인 요구가 뒤따를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는 비망록만이 남겨졌다는 점 또한 이러한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동시대 공간축에서의 상대 평가에서 한국은 긍정적인 측면을 확보했다.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경쟁국들과도 협상을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 EU와 동등한 수준의 관세율을 확보했다. 특히 미국에 절실했던 조선 협력을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한 점이 주효했으며, 경쟁국에 비해 추가 개방의 이득이 크지 않은 국내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아낸 점은 다행스러운 결과로 평가된다.
가장 중요한, 전지적 트럼프 시점에서의 평가는 한국이 미국의 경제안보 재편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한국을 ‘15% 클럽’에 가입시키면서, 미국이 그려가는 미중 패권 경쟁 체스판의 중요한 말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동맹국들의 불만을 야기하고 미국의 고립을 초래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한국의 경제안보 전략 수립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을 제시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15% 클럽’ 회원으로서 조선, 반도체 등 한국의 산업이 미국의 동맹 체제 안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곧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를 최소화하고, 합의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노력이 시급하다.
중기적으로는 미국 동향에 대한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트럼프발 상호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이 가시화될 경우, 한미 FTA에 따른 경쟁 우위를 상실한 산업계에 대한 다각적 지원이 불가피하다. 또한, 상호 관세의 근거 법인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의 운명에 따라 상호 관세 환급 요구, 재협상 가능성 등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중장기 전략은 ‘15% 클럽’ 가입이 향후 대중 제조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안보 비용 분담, 주한미군 및 한국군 역할 변경 등 ‘공정한 비용 분담’을 압박할 것이므로, 한국은 경제안보 전략을 수립하고 예측 불가능한 한미 관계에 원칙 있는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핵심 제조업의 과도한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 공동화를 초래하지 않도록 AI, ICT, 그린 기술과 접목한 국내 제조혁신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또한, 수출 시장 다각화와 더불어 건실한 내수 진작 및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내수 시장 외연 확대라는 대수술도 필요하다.
‘15% 클럽’ 내에서는 강대국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 확보를 위한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15% 클럽’ 밖에서는 규범 기반 다자무역질서 복원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 정부, 국회, 산업계, 시민사회가 총력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포용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경제안보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