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날 공원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가 직면한 정책의 빈틈이 드러나고 있다. 떡과 음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지만, 그들이 앉은 자리에는 낡고 고장 난 등받이 의자가 놓여 있다. 심지어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의자까지 동원된 현실은, 어르신들이 처한 일상의 불편함과 정책 대상자의 삶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
겉보기에는 깔끔하게 조성된 공원 내 평상형 벤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이 낡고 고장 난 의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직접 여쭙자 그들은 공원의 벤치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등받이가 없어 허리를 기대기 어렵고, 딱딱한 좌판은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배기며,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가워 앉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낡고 허름하지만 등받이가 있고 좌판에 쿠션이 있는 의자는 그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제공한다. 이는 비단 공원 벤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에서 조성한 정자나 평상 역시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이용하기에는 구조적인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모든 세대가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집, 마을, 도시, 지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책 대상자의 실제 삶과 경험을 면밀히 살피고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시설이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르신들의 일상적인 하루 삶을 현장에서 자세히 살피고,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국가 및 지자체 정책 수립에 반영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에는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와 같은 국가승인 통계가 존재하지만, 이 조사들은 주로 “집에 방은 몇 개입니까?”와 같은 사실 확인에 집중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 확인식 조사는 어르신들의 평균적인 삶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집 현관은 이용하시는데 무엇이 불편하십니까?”, “공원과 공원 시설물 이용에는 무엇이 불편하십니까?”와 같이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활 환경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함께 듣는 ‘경험 체크식 조사’가 결합될 때, 비로소 국민 체감형 지원 정책이 실현될 수 있다.
실제로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 커뮤니티 정책연구센터가 2021년 발간한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도시공간”은 이러한 경험 체크식 조사 결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기존 실태조사에서 다루지 못했던 어르신들의 불편한 주거 공간과 외부 활동 시 겪는 어려움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예를 들어, 욕조 높이가 높아 들어가기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응답은 어르신에게 적정한 높이와 너비의 욕조, 편안한 변기, 미끄럼 방지 바닥재, 안전손잡이 설치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또한, 고르지 못한 보도블록이나 짧은 보행신호로 인한 낙상 경험은 어르신에게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과 보행신호 조정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특히 올해는 향후 본격화될 초고령사회 대응 국가 기본계획인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26~2030)이 수립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관련 부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주요 정책과제와 사업추진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어르신들과 지역 주민들의 실태와 경험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러한 체감형 정책만이 비로소 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고, 모두가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