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직면한 고질적인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는 신산업 육성의 실패에서 비롯된 심각한 병폐이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에서도 드러나듯, 청년 고용률은 1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학업이나 취업 준비, 육아·가사 등 구체적인 이유 없이 쉬는 ‘쉬었음’ 청년은 2020년부터 40만 명대를 지속하며 노무현 정권 초기보다 20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일부에서는 청년 세대의 나약함을 탓하지만, 이들의 노동시장 이탈은 최저시급 이하의 급여, 열악한 근무 환경, 사적 심부름 강요, 직장 내 괴롭힘 등 ‘상식적’ 일자리조차 부족한 현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의 급증과 청년 일자리의 감소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8월 기준으로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하여, 지난해부터는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나는데, OECD 국가들의 평균에서 65세 이상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의 59% 수준에 불과하며, 한국과는 달리 청년 일자리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일자리 부족 문제는 일거리를 창출하는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제조업의 일자리 비중은 1991년 약 27%에서 올해 15%로 급감하며, 일본이 50년에 걸쳐 진행한 탈공업화가 33년 만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한국 제조업이 미국 등 선진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 중 생산 부문에 특화하고, 고부가가치 사업 서비스는 해외에 의존하는 ‘자기완결성을 결여’한 구조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는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인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으며, 이는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1991년 92% 이상이었던 자영업자 평균 소득/급여생활자 평균 소득 비중은 지난해 35% 이하로 하락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고령화로 이어져 자영업자 고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015년 25%에서 지난해 37%까지 급증했다. 반면, 신산업 육성 실패는 25~34세 핵심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 606만 명에서 올해 8월 535만 명으로 70만 명 이상 감소했다. 30~34세 일자리 또한 1991년 8월 310만 명에서 2025년 8월 294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취업자는 339만 명이나 증가하며, 고령층은 레드오션인 자영업이나 정부 지원 일자리에 의존하고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된 기술 혁명, 즉 인터넷 및 IT 혁명, 데이터 혁명을 거쳐 AI 혁명으로 이어지는 산업체계의 지각변동 속에서 한국의 신성장동력 찾기와 혁신 노력은 실망스러운 성과를 보여왔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과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에 사활을 거는 배경이다. 그러나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의 산업 정책에 대한 처절한 자기비판이 요구된다. ‘한강의 기적’이 미국이 만든 산업 생태계의 일부를 떠맡는 ‘식민지형 산업화’였다면, AI 3대 강국은 자기완결형 디지털 생태계 구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디지털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획일주의, 줄세우기,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행 교육 시스템으로는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기존 교육 시스템에서는 과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과 협력하여 창의적인 답을 만들어내는 인재 양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처럼 플랫폼 사업모델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이유도, 위계와 경쟁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 이익 공유, 협업을 특징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 모델 문화와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플랫폼 사업 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해 진화하지 못한 결과, 한국은 ‘데이터 혁명’과 ‘AI 혁명’에서 뒤처지게 되었다.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모바일 기기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조차 AI 대전환 과정에서 2류 기업으로 전락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AI 모델을 활용해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 모델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는 인재 양성 없이는 달성 불가능하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을 제공하고 ‘쉬었음’ 청년에게 생활비까지 지원하며 ‘AI 전사 육성’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 정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과의 ‘결별’이 필수적이다. ‘AI 전사’는 획일주의와 경쟁 환경의 산물인 모노칼라 인재를 만들어내는 현행 교육 시스템과 양립할 수 없다. 영국이 근대 산업 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과 더불어 사회 지배 세력의 교체, 사회 혁신을 통해 산업 혁명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혁명 없이는 성공적인 AI 대전환이 어렵다는 사실은, AI 인프라와 모델에서 2대 강국임에도 20%에 가까운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AI 전사’들의 새로운 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유를 보장하기 위해 ‘쉬었음’ 청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기적 사회 소득의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 소득의 제도화는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시드머니가 될 것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이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