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 한낮 기온 35도를 넘어서고 밤에도 더위가 쉬이 가시지 않는 열대야가 지속되면서, 폭염은 더 이상 견뎌내야 할 계절적 현상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실제로 지난 2023년 여름, 대한민국은 폭염으로 인해 2800여 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으며, 안타깝게도 32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러한 폭염을 과거의 경험과 관측치를 뛰어넘는 극도로 이례적이고 파괴적인 기후 현상인 ‘극한기후’로 규정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심화로 한반도의 여름은 길어지고 있으며, 폭염의 빈도와 강도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곧 우리가 폭염이라는 재난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폭염으로 인한 고통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 피해는 노인, 만성질환자, 어린이, 그리고 야외 근로자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농촌의 고령 농업인들과 도시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이 가장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폭염을 일반적인 계절 현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남아있으며, 폭염은 눈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다가오는 ‘침묵의 살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재난행정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과거 재난 발생 이후의 수습과 대응에 초점이 맞춰졌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적인 위험 예측과 피해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행정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무더위쉼터 확대, 폭염 알림 서비스 제공, 그리고 방문 점검 등을 통해 폭염 대응 정책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하지만 무더위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독거노인이나 스마트폰이 없어 정보를 얻기 힘든 취약계층과 같은 현장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관 협력을 넘어선 첨단 기술 기반의 하드웨어적 재난 대응 강화가 필수적이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기업이 협력하여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와 같은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폭염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폭염 관리시스템이 도입되어, 취약 지역의 폭염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위험군을 사전에 파악하여 적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행정기관과 민간이 신속하고 정확한 예방 대책을 추진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문화체육관광 분야에서도 여름철 각종 문화행사 및 스포츠 활동이 폭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여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 축제 및 행사 주최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행사장 내외에 충분한 무더위쉼터와 쿨링존을 설치하고, AI 기반의 스마트 모니터링을 통해 관람객의 안전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한, 폭염 위험 시간대를 피해 행사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등 보다 안전한 행사 개최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도 시급하다. 체육시설과 경기장에도 AI 기반의 냉방시스템을 도입하고, 야외 체육 행사 시에는 무더위 휴식 시간을 의무화하여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기술적, 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국민 개개인의 관심과 책임 의식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민은 폭염 특보 및 경보와 같은 재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주변 이웃의 상황을 살피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폭염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이 바로 우리 주변의 가족과 이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후 변화가 심화되는 오늘날, 폭염과 같은 극한기후 현상은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정부와 민간, 시민사회가 긴밀히 협력하고 AI 등 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대응하지 않는다면, 매년 여름 같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폭염이 일상화된 지금, 문제의 심각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적극적인 예방 및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더위는 참으면 된다’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폭염을 피할 수 없는 계절 현상이 아닌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해야 할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은 기술과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국민은 작은 실천을 통해 서로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며, 정부와 국민이 함께 손잡고 극한기후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올여름, 우리 모두의 작은 관심과 적극적인 대응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