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성장과 개발의 이면에 자리했던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제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과거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공간이 혁신적인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고,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인 뼈다귀해장국이 일상과 별식이 된 현실은, 묵묵히 견뎌낸 시간의 가치를 증명한다.
과거 도시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몰려드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서울의 포화 상태를 피해 부천은 수많은 공장과 일자리를 바탕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실현하는 터전이 되었다. 이곳은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이 되며 가난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과 인류애를 담아내 많은 이들에게 고향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이처럼 과거 산업화의 중심지였던 부천 삼정동에 약 33년 전, 쓰레기 소각장이 건설되었다. 1995년 5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이 소각장은 하루 200톤에 달하는 서울 및 수도권의 쓰레기를 처리했지만, 1997년 허가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고농도 다이옥신이 검출되며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주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의 끊임없는 반대와 개선 요구 끝에 2010년 소각 기능은 대장동으로 이전되었고, 삼정동 소각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 쓸쓸한 폐건물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2018년 ‘부천아트벙커B39’라는 이름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과거 쓰레기를 태우던 거대한 굴뚝과 소각로는 이제 하늘과 채광을 끌어들이는 ‘에어갤러리’로 변신했으며, 쓰레기 저장조였던 ‘벙커’는 ‘B39’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되어 독특한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쓰레기 반입실이었던 공간은 멀티미디어홀(MMH)로, 펌프실, 배기가스처리장, 중앙청소실 등 기존의 설비들은 아카이빙실 등으로 활용되며 과거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RE:boot 아트벙커B39 아카이브展’은 다이옥신 파동과 시민 운동, 그리고 이곳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내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러한 도시의 물리적인 변화와 더불어, 과거 개발도상국의 애환이 담긴 음식 역시 일상이자 별식이 되었다. 부천 원미동, 과거 ‘멀뫼’ 혹은 ‘조종리’로 불리던 지역에는 ‘청기와뼈다귀해장국’과 ‘조마루뼈다귀해장국’ 본점이 마주하고 있다. 이 음식의 기원은 인천 미군 부대에서 나온 돼지 뼈다귀에서 시작되었으며, 살코기가 많고 저렴한 수입산 돼지고기를 활용하여 푸짐한 감자탕과 뼈다귀해장국을 제공하며 주머니 사정 가벼운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1988년 부천 원미동에서 시작된 한 가게의 뼈다귀해장국은 깍두기, 양파, 청양고추와 같은 ‘국룰’ 반찬과 함께, 맑고 깨끗하며 산뜻한 국물 맛으로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K-푸드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가난과 허기를 이겨낸 지혜의 음식이자, 쓰레기 처리장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한 부천의 이야기는, 묵묵히 견뎌낸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의 어두운 흔적들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평범한 음식 또한 깊은 서사를 담아내며 우리 삶의 일부가 되는 과정은, 오래 견디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