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적’에서 ‘보이지 않는 적’으로 전환된 21세기 안보 환경 속에서, 한국은 더 이상 국제 규범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닌 능동적 ‘제안자’로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 의장석에 앉아 ‘인공지능(AI)과 국제평화·안보’라는 새로운 안보 화두를 제시한 것은 한국 외교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의는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의례적 회의를 넘어섰다. AI 기술이 국가 안보 역량을 결정하고 사이버 공격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시대라는 현실 인식은 안보리가 AI 문제를 다뤄야 하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허위정보의 무기화, 자율무기 시스템의 확산, 국가 간 사이버 공격의 일상화는 더 이상 기술적 이슈가 아닌 국제평화와 직결된 안보 문제이며, 한국이 이를 안보리 의제로 끌어올린 것은 미래 안보 거버넌스의 방향을 제시한 선구적 행보라 할 수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한국이 제시한 ‘모두를 위한 AI’ 비전이다. 이는 현재 AI 발전 패러다임이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정면으로 지적하며, AI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양극화와 소외 문제에 대한 깊은 우려를 담고 있다. 서구 선진국 주도의 AI 논의가 기술적 우월성과 경제적 효율성에 집중해 온 것과 달리, 한국이 제안하는 ‘AI 기본사회’ 개념은 기술 발전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게 고르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포용성’의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이는 AI 거버넌스에 ‘접근성’과 ‘형평성’이라는 새로운 가치 축을 제시한 혁신적인 접근이며, AI를 민주주의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인식하고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은 기술 발전과 민주적 참여의 선순환을 이루려는 한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번 안보리 공개토의는 AI를 기후변화, 지속가능발전과 연계한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가 주도할 기술 혁신이 기후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과제 해결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언급은 AI를 인류 공동 문제 해결의 핵심 수단으로 위치시킨다. 이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의 ‘재생에너지 기반 AI 데이터센터’ 협력과 같은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져, 12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운용사와의 MOU는 AI 발전과 환경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한국만의 독창적 모델을 제시한다. 핑크 회장이 한국을 아시아의 AI 수도로 만들기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힌 것은 한국의 AI 비전이 국제적 신뢰를 획득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의 AI 외교는 유엔총회를 통한 글로벌 규범 제안, 블랙록과의 협력을 통한 실행 자본 확보, 그리고 경주 APEC에서 공개될 ‘AI 이니셔티브’를 통한 지역적 확산이라는 ‘민관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민간 자본이 이를 뒷받침하며, 국제기구에서 규범을 제안하는 중견국 외교의 진화된 형태로 평가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은 ‘포용적 AI’와 ‘지속가능한 AI’라는 새로운 가치 중심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첨단 기술 발전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이바지하는 ‘모두를 위한 AI’ 비전이 국제사회의 뉴노멀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는 한국의 의지는 기술 발전의 방향성 자체를 인간 중심적이고 포용적으로 설정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AI 허브로 부상한다면, 이는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미국-중국 양극 구조에 제3의 축을 형성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닐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안보리 공개토의는 한국이 AI 시대 글로벌 거버넌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확보했다. ‘모두의 AI’ 선언은 AI 시대의 발전 패러다임이 소수 기술 강국 주도의 배타적 모델이 아닌, 모든 국가와 계층이 참여하는 포용적 모델이어야 한다는 질문을 국제사회에 던지고 있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글로벌 차원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는 한국의 답은 도덕적 당위성을 넘어선 실용적 필요성에 기반한 판단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기술의 독점이 아니라 공유와 협력에 있음을 한국이 세계에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실제 국제 규범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한국의 지속적인 외교적 노력과 정책적 실행력에 달려 있지만, 적어도 한국이 ‘AI 룰메이커’로 부상할 역사적 기회가 열렸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