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전례 없는 위기’라는 혹독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빈사 상태에 빠진 소비를 살리기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이라는 응급처치가 시도되고 있지만, 이는 장기적인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발표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당면한 소비 절벽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재정 부담 또한 만만치 않아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과거 미국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충격 속에서 미국은 2021년 1월, ‘미국 구조 계획법(the American Rescue Plan Act)’을 통해 GDP의 8%에 달하는 1.9조 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당시 이 추경안은 “전례 없는 위기에 대한 전례 없는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 결과 2021년 2분기부터 소비지출은 완전히 회복되고 장기 추세까지 초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러한 소비 회복에 힘입어 임기 중 연평균 3.6%라는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정부 채무 또한 GDP 대비 121.4%에서 109.5%로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가계 부채 역시 2019년 말 74.6%에서 2023년 3월 73.2%로 오히려 감소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소비 부양, 경제 성장, 정부 및 가계 채무 안정이라는 네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성공적인 위기 대응 사례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은 2020년 GDP의 0.7%에 불과한 14.2조 원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그쳤다. 그 결과 2020년 가계 소비지출은 GDP의 3.9% 규모인 79조 3394억 원이나 감소했으며, 이후에도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2023년 5.5%까지 하락폭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소비 부진은 가계,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 급증으로 이어졌으며, 가계 실질 가처분소득은 2020년 수준, 실질 소비지출은 2016년 수준으로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정부 채무는 2019년 말 GDP 대비 35.4%에서 2023년 말 46.9%로, 가계 부채는 2019년 말 89.6%에서 2023년 9월 99.2%로 급증하며 ‘전례 없는’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전염병’으로 인한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 상실이 코로나19 팬데믹 충격보다 더 심각한 ‘자발적’ 경제 생태계 붕괴를 야기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출범한 새 정부는 ‘제2 IMF’로까지 비유될 정도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한 지난 두 달간의 위기관리 능력에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소비심리 지수가 회복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2분기, 한국 경제는 4개 분기 만에 지난해 1분기 GDP 수준을 회복하며 위기의 늪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가계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플러스로 전환되며 주식시장 또한 빠르게 반응하는 등 민주주의 회복과 새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심리적 개선을 넘어 실물 경제의 방향을 확실히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실물 경제 개선을 위해서는 가계 소득을 강화하는 구제 및 지원이 필수적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불리는 ‘민생지원금’은 현재 1분기 가계 지출 부족분의 1/3 규모에 불과하며, 연간 가계 소비 부족분 145조 6395억 원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각 부처에 추가적인 소비 진작 프로그램을 준비하라고 당부한 배경도 이러한 한계를 인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아가, 서민과 중산층의 생계를 위해 식음료와 에너지 등 생활 물가 안정은 최우선 과제다. 2020년 대비 16.3% 상승한 전체 소비자 물가와 달리, 식료품 및 에너지 물가는 27.3%나 상승하며 서민과 중산층의 실질 소득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싱가포르와 같이 소득 계층별 물가 상승률을 조사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현재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단기적인 생명 연장을 위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재정 부담으로 인해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급한 불을 끈 후에는 재정 부담이 없는 정기적인 사회 소득, 즉 임금 지급의 제도화가 민생 회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한국 경제가 직면한 진정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