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티 반군의 홍해 민간상선 공격 등 예측 불가능한 지정학적 혼란과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임기 전반을 마치고 후반기에 돌입했다. 이러한 격랑 속에서 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문제 해결’이라는 냉철한 분석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과 주변 강대국 간의 갈등 고조라는 우리 안보의 근본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윤 정부는 ‘명실상부한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솔루션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윤석열 정부 임기 반환점을 맞아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추진’이라는 비전 아래 그간의 외교 성과를 설명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외교장관 취임 이후 100회의 공식 양자 회담을 포함해 총 120여 회의 외교장관 접촉은 우리나라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자리에서 북핵·북한 인권 문제, 한미 글로벌 포괄 전략동맹 심화, 경제 안보 및 민생 외교, 글로벌 중추국가 다자 외교, 인도·태평양 전략, 재외국민 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윤 정부의 외교적 성과를 피력했다. 또한, 통일부 역시 ‘원칙 있는 대북정책’, ‘북한인권 증진 노력’, ‘통일역량 강화’라는 정책 방향을 통해 어려운 정세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왔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재확인하고, 한미일 3국 안보협력 확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2023년 4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동맹 70주년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을 ‘가치동맹’ 위에 ‘안보, 경제, 기술, 문화, 정보’라는 다섯 개의 기둥을 가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공동성명은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한미동맹’이라는 비전 아래 자유, 법치,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지향점을 담았다. 더불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구체화했으며, 핵협의그룹(NCG) 신설은 기존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보다 ‘핵 운용’ 관련 사안에 집중하여 북한 핵 대응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리 관여를 크게 확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한미 양국 범정부 참가자들이 한반도 상황에 맞춤형으로 핵 및 전략 기획을 심도 있게 협의하는 체제를 마련한 것이다.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정례적 전개는 확장억제의 가시성을 증진하는 중요한 성과이며, 특히 생존성이 가장 높은 전략핵잠수함(SSBN) 기항 예고는 강력한 전략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또한, 사이버 안보 협력 강화와 차세대 핵심 신흥 기술 대화 공동성명 등은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이 말 그대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자리 잡았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른 한 축으로는 2023년 8월 18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캠프데이비드 정신’은 3국 협력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며 모든 영역과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그 너머까지 협력을 확대하고 공동의 목표를 높이기로 약속했다. ‘캠프데이비드 원칙’은 3국 간 파트너십 및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에 대한 공동 비전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지침이 되었으며, ‘3국협의 강화 공약’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 도발, 위협에 대한 대응을 조율하기 위해 3자 차원에서 신속하게 협의할 것을 공약했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은 오랫동안 미국의 숙원 사업이었으나, 항상 ‘약한 고리’로 평가받았던 한일 관계를 극복하고 별도의 정상회의가 개최된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전반기 외교안보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남북 관계의 경색과 단절이다. 북한의 고강도 도발과 ‘적대적인 교전국 관계’ 규정 등 남북 관계 악화는 한반도 우발사태 가능성과 군사 충돌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우려스러운 상황을 야기했다. 특히,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우리에게 민감 군사기술 제공 가능성과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개입 길을 열어놓는 새로운 리스크를 의미한다. 1961년 체결되었다가 폐기된 ‘조·소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에 담겼던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사실상 복원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의 체결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윤석열 정부 후반기 외교안보 환경은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라는 최대 변수를 안고 있다.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한 핵 타협 가능성, 한미 경제·통상 관계 조정 요구, 그리고 미국의 대중국 압박 동참 요구 증대 등은 한국에 세 가지 어려움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과 리스크가 증대하는 파편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은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한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우리에게 닥쳐올 리스크를 분산하고 방지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미국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자유, 평화, 번영의 국가안보전략 추구를 통해 미국과의 가치 외교 공통분모 확대를 지향해야 한다. 더불어, 유사 입장 국가들과의 네트워킹 확대와 중견국 연대력을 활용하며, 국제정세가 불안정할수록 균형과 탄력성에 기반한 유연한 전략적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 후반기 외교안보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