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질서의 불안정성과 심화되는 기후 위기 속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기후 대응 정책과 통상 정책을 연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환경 규제의 강화 차원을 넘어, 기업의 제품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상하며 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과거에는 자율적인 기후변화 대응 속도를 조절해왔지만, 이제는 글로벌 경제 질서 속에서 ‘탄소 배출량’이 제품의 원산지 증명과 같은 중요한 통상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처럼 자동차 부품 생산부터 완성차 조립까지 전 과정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수출 제품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이를 감축하려는 노력이 기업의 가격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기후-통상 연계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수단은 다름 아닌 ‘기후기술 확보’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초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에너지 전환 투자 전략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욱 집중하고 있다. 이는 여러 동인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첫째, 태양광 설비 가격이 지난 10년간 10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며 기술 가격 하락과 보급 확산의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 기준 신규 발전소 설치 용량의 5분의 4가 재생에너지였으며, 2023년에는 전체 재생에너지 신규 설치 용량의 4분의 3을 태양광이 차지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둘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EU의 탄소중립산업법(NZIA)과 같이 특정 산업의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정부 지원은 탄소중립에 대한 경제성을 높여 자국 내 관련 투자를 활성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강한 의지 또한 기후기술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세계 최초로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명명식을 가진 사례는 이러한 새로운 시장을 향한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전력망이 다른 국가와 연결되지 않고 전력 시장이 개방되지 않아 유연성이 부족하며, 제한적인 자연자원으로 인해 글로벌 기술 가격 하락 효과를 충분히 체감하기 어렵다. 또한, 수출 지장을 최소화하려는 방어적 대응에 집중하면서 탄소중립 투자 활성화로의 연계에는 둔감한 측면이 있다. ‘first mover’보다는 ‘fast follower’에 익숙한 한국 기업들에게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기업들은 단기 감축 규제와 기술 지원에 대한 정책 신호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후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효과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의 접근이 필수적이다. 전체 기술 정보의 80% 설명력을 갖는 특허 데이터를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은 유망 분야 선정, 핵심 기술 파악, 접목 기술 색인, 기술 벤치마킹, M&A 타겟팅, 기술 가치 평가 등에 객관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기술의 35%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거나 시장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전기화, 에너지 효율, 수소, 탄소 제거 등 다양한 기후 기술 분야에서 여전히 새로운 시장 선점의 기회가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더불어, 2023년 12월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결과는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COP28 합의 사항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30년 국가 감축 목표 달성 경과를 포함한 격년 투명성 보고서를 2024년까지 제출해야 하며, 2025년까지는 더욱 야심 찬 2035년 국가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정부는 2024년 내에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년~2030년)에 대한 기본계획 및 할당계획을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 법정 계획 수립 과정에서 COP28 결정문 및 유엔에 제출할 국가 감축 목표와의 정합성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결과적으로 국제사회의 합의는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초래하고, 이는 기업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요구를 더욱 증대시킬 것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기후-통상 연계의 가시화, 기후 기술 경쟁 가속화의 동인, 한국의 특수성과 기후 기술 확보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COP28 결과에 따른 국내외 후속 조치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전략을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외 정책 및 전략 형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정부와 입법 담당자들, 그리고 고객사 및 공급망 파트너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