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재 사고 사망자 수가 10만 명당 3.9명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독일, 일본, 영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들이 1명 전후의 사망자 수를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갈 길이 먼 실정이다.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사고 사망자가 집중되고 있으며, 기업 규모로는 중소사업장에서, 연령대별로는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 사고 사망 비중이 2023년 기준 64.2%에 달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또한 최근 외국인 노동자 고용 증가에 따라 외국인 사고 사망자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으며, 대기업의 위험이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원하청 관계의 문제점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실은 ‘건설업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소사업장의 산재 사고 사망을 줄이는 것’이 시급한 산재 예방 대책의 방향임을 시사한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해왔으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고 노동자 이직이 잦은 중소사업장에서는 정부 지원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2023년 기준 290만 개에 달하는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의 경우, 지원받는 사업장 비율이 매우 낮고 지원 대상 사업장을 늘리면 사업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정부 지원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설령 인지하더라도 정부의 간섭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더 큰 문제는 수십 년간 전문가와 정부 주도로 산재 예방 사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자와 사업주가 제도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노사 당사자들이 산재 예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기업은 산재 예방 비용을 지출로만 인식하고 노동자들은 위험한 업무를 ‘숙련’으로 치부하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기도 했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분명한 방향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주체들이 소외된 채 진행되어 온 산재 예방 정책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5년 9월 15일,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했다. 이번 종합대책은 그간 논의된 산재 예방 방안들을 집약했으며, 특히 중소사업장 산재 예방 사업에 지자체를 포함하고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 권리, 피할 권리’ 등 ‘노동안전 3권’을 규정하는 점이 새롭게 눈에 띈다. 또한, 산재 발생 사업장에 대한 경제적 제재 강화 방안도 포함되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노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이들을 산업안전보건의 ‘주체’로 명확히 규정한 점이다. 특히 각 기업별로 노사가 진행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원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도록 한 중소사업장 대책은 기존의 개별 기업 단위에서 벗어나 사업장 단위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노동계의 오랜 요구였던 작업중지권을 ‘피할 권리’로 확대하여 보장을 강화한 것 또한 긍정적인 변화이다. 더불어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스마트 안전 장비와 AI 기술 지원을 확대하여 기업의 자체적인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선진국 수준의 틀을 갖추고 있으나, 현장에서의 작동성과 관리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 아무리 좋은 산재 예방 제도가 마련되어 있더라도 실제 현장의 당사자인 노사가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당사자인 노사가 산재 예방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아가 노사 공동의 산재 예방 노력이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지역 및 업종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세밀한 관리 방안 마련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