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2024년 12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72년에는 전체 인구의 47.7%가 고령자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고령자의 주거 환경 혁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로 부상시키고 있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고령자가 익숙한 집과 지역에서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초고령사회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고령자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하는 비율이 87.2%에 달할 정도로 ‘지역사회 지속거주(Aging in Place)’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바람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 기존의 주거복지 시스템은 저소득층과 시설 중심으로 설계되어 중산층과 다양한 건강 상태를 가진 고령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전체 고령 인구의 0.22%만이 노인복지시설에 수용 가능하며, 주택, 돌봄, 의료, 복지 서비스가 부처별로 분절되어 제공되면서 고령자의 실제 필요에 따른 통합적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소득·허약 고령자는 현재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에이지테크(Age-Tech)’가 주목받고 있다. 에이지테크는 고령자의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후 생활을 지원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 기술 등을 활용하여 고령자의 안전, 건강, 사회참여, 이동, 정서 지원 등 일상 전반을 돕는다. 예를 들어, 낙상감지 센서, 원격 건강 모니터링, 음성인식 조명, 자동 온도 조절, AI 돌봄 로봇 등은 고령자가 익숙한 집에서 더욱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미 일부 통신사업체는 통신 빅데이터와 전력 사용 패턴 분석을 통해 독거노인의 고독사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즉각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은 기존 지역사회 내 저소득 고령자 비율이 높은 공공임대주택 등을 ‘자연은퇴노인 주거공동체(NORC)’로 지정하고 커뮤니티 기반의 복지·의료·생활 서비스를 결합하는 고령친화 주거단지 조성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단지에는 센서 기반 스마트홈, 원격 건강 모니터링, AI 안부 확인 서비스 등 에이지테크가 결합되어 고령자의 안전과 건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며 고독사 예방 등 사회적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대학과 연계된 시니어 레지던스에 온라인 평생교육, 사회참여 플랫폼, 원격의료 서비스 등 디지털 기반 에이지테크를 적용하여 고령자의 사회적 연결과 평생학습, 건강관리를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이러한 에이지테크 연계 고령친화 주거복지 강화의 효과로 고령자의 자립성과 존엄성 강화, 돌봄 인력 부담 완화, 사회적 연결 및 고독사 예방, 맞춤형 건강관리 및 의료비 절감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에이지테크가 실제 고령자의 주거 및 생활 환경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입증해야 진정한 사회적 가치와 확산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공간 단위의 실증과 리빙랩(Living Lab) 확대가 시급하다. 에이지테크는 실제 주거 공간, 아파트 단지, 마을, 지역사회 등 다양한 공간 단위에서 고령자, 가족, 돌봄 인력 등이 직접 참여하는 리빙랩 방식의 실증이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기술의 사용성, 수용성, 효과성을 검증하고 현장 수요에 맞는 맞춤형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실증사업은 대학, 기업, 지자체, 정부 출연 연구기관, 복지 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오픈 플랫폼 및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추진되어야 하며, 우수 성과는 공공 조달 등 혁신적인 확산 경로와 연계되어야 한다.
더불어 지역사회 기반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고령자의 일상생활 지원은 개별 주택이나 시설 중심의 접근을 넘어, 보건·복지·의료·주거·교통·여가 등 다양한 서비스가 지역사회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에이지테크를 활용하여 일상 지원 서비스를 연계하고자 하더라도, 지역사회 내 연계될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에이지테크의 활용성이 담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의 법·제도적 기반 위에 지자체 주도의 실행력과 민간의 혁신 역량이 결합된 단계적·포용적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에이지테크에 기반한 고령자의 건강하고 독립적인 노후 생활 환경 조성은 기술 개발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생활환경 조성 국토교통부, 의료·돌봄 서비스 지원 보건복지부 등 부처별·개별적 추진의 한계를 넘어, 주택·복지·교통·의료 등 관련 정책과 사업이 공간 단위에서 유기적으로 연계·통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종합 계획 수립, 복합 사업 추진, 법 제도 연계 강화 등 거버넌스 혁신 또한 요구된다. 결국 에이지테크는 기술 자체가 아닌, 고령자의 자립과 존엄을 실현하는 건축도시공간 기반의 ‘생활 인프라’로 이해되어야 한다. 어르신이 익숙한 집과 지역에서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정책의 핵심이다.
에이지테크의 실증은 반드시 어르신의 실제 생활 공간, 즉 공간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리빙랩 등 현장 기반 실증 사업을 확대하고 지역사회 통합 지원 체계와 연계해야 한다. 어르신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지역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 연계와 공간 단위 지원을 통해, 에이지테크가 어르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독립과 존엄을 보장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은 단일 부처나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범부처·민관 협력과 사회 전체의 관심과 투자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