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재 사고 사망률은 1995년 10만 명당 34.1명에서 2024년 3.9명으로 크게 감소했지만, 독일, 일본, 영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들이 1명 전후의 사망률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사고 사망자가 집중되고 있으며, 기업 규모로는 중소사업장이, 연령대별로는 55세 이상 고령 근로자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고 사망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대기업의 위험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 원하청 관계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건설업과 제조업, 그리고 중소사업장의 산재 사고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 산재 예방 대책의 핵심 과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부는 그동안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해왔으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고 노동자 이직이 잦은 중소사업장 현실에서는 정부 지원의 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이 290만여 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지원받는 사업장의 비율이 현저히 낮고, 지원 대상 사업장을 늘리면 사업의 질이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많은 중소기업들은 정부 지원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수십 년간 전문가와 정부 주도로 산재 예방 사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자와 사업주가 제도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만 인식되어 온 점이 꼽힌다. 이로 인해 노사 당사자들은 산재 예방에 소극적이었고, 기업은 산재 예방 비용을 부담으로 여기거나 노동자들은 위험 작업 시 안전수칙 미준수를 ‘숙련’으로 인식하는 왜곡된 문화가 자리 잡기도 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2025년 9월 15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종합대책은 그동안 논의된 방대한 내용을 집약하면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주요 내용으로는 중소사업장 산재 예방 사업에 지방자치단체를 포함시키고, 노동자들의 알 권리, 참여 권리, 피할 권리 등 ‘노동안전 3권’을 규정하며, 산재 발생 사업장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소사업장 산재 예방에 지자체가 참여한다는 점 외에도, 노사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며 이들을 산업안전보건의 ‘주체’로 명확히 규정하고 예방 노력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 기업별로 노사가 진행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원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도록 한 점은 기존의 개별 기업 단위에서 벗어나 사업장 단위로 산재 예방 노력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노동계의 요구가 반영된 작업중지권을 ‘피할 권리’로 정의하고 보장을 강화한 점, 그리고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스마트 안전장비 및 AI 기술 지원을 통해 자체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산업안전보건 제도는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작동성과 관리 측면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아무리 좋은 산재 예방 제도라도 당사자인 노사가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번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노사 당사자가 산재 예방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지역 및 업종 차원으로 산재 예방 노력이 확산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세밀한 관리 방안 마련이 기대되는 시점이다.